트럼프, 정상 30여명 만났는데… 한미 회담엔 미적미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통상 협상 압박이 출범 한 달여를 갓 넘긴 이재명 정부의 외교에 큰 시험대가 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관세·안보 양면의 문제를 풀려 했지만, 미국이 통상 협상의 진전을 정상회담과 연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통상 협상 성과가 없으면 정상회담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어 회담 추진이 구체적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7일(현지 시각) 위 실장과 루비오 장관의 만남은 ‘다음 달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된 후 이뤄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면담에서 우리 측이 “조속한 시일 내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제반 현안에서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진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했으며, 미국 측은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외교 면담에서 정상회담이 확정되면 ‘언제 어디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는데, 구체적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측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대상 관세 서한이 금일 발송됐다”며 “실제 관세 부과 시점인 8월 1일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양국이 그 전까지 합의를 이루기 위해 긴밀히 소통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통상 협상 타결부터 서두르자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김용범 정책실장 주재로 ‘대미 통상 현안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열었다. 김 실장은 미국과 최종 합의를 하기엔 새 정부 출범 뒤 시간이 부족했다며 “조속한 협의도 중요하지만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가치”라고 밝혔다고 한다.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비관세 장벽 문제가 한미 관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통상 협상이 잘되면 내일이라도 당장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식이지만 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소고기·쌀 수입 제한 완화 등은 우리 정부로서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관세 협상에 대해 “우리가 맨 먼저 나서서, 서둘러서 협상을 조기 타결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도 정부는 ‘협상이 길어질수록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 미군 재조정 등에 착수하면, 이재명 정부의 안보·정치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도 이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가 2기 임기 시작 후 지금까지 백악관에서 만났거나 만날 예정인 각국 정상들과 중동 3국 순방 때 만난 정상들, 두 차례 다자 정상회의(G7·나토) 참석에서 조우한 정상들을 합치면 30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가봉, 기니비사우, 모리타니, 라이베리아, 세네갈 등 아프리카 5국 정상도 만날 예정이다.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이 나라들은 망간·우라늄·보크사이트 등 광물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인 조선 협력과 국방비 증액 등 여러 현안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리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한데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나 미국의 대중 견제나 안보 전략에 참여할지 확인이 안 된 상태”라며 “양국 정상이 만나 통상·안보 전반의 담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상회담 자체가 관세 문제의 해법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회담과 통화를 했다. 하지만 ‘트럼프 서한’에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상호 관세는 기존의 24%에서 25%로 1%포인트 올랐다. 김현욱 세종연구소 소장은 “관세 협상 관련 세부 사항은 어느 정도 해결한 뒤 정상회담을 하는 게 낫다”며 “해결된 게 없는 상태에서 만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또 잡음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환율, 李대통령 ‘구두 개입’에 나흘 만에 하락… 장중 1460원대까지
- [만물상] 정당방위
- 넷플릭스, 차은우·유재석도 잡았다
- 컬리 대표 남편, 수습 직원 성추행 의혹… “정직 처분, 업무 배제”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또 일부승소… 법원 “국가도 책임 있다”
- 서울시무용단 ‘일무’ 안무가들, 뉴욕 베시賞 주인공 됐다
- “계엄이 빨리 끝난 건 국민 덕분”… 선고 중 울컥한 이진관 부장판사
- [단독] 정교유착 합수본, ’20년 신천지 활동 후 탈퇴' 현직 목사 소환 조사
- “사람이 피 흘리며 쓰러져 있다”…양산서 20대 숨져
- 새 대법관 후보에 김민기·박순영·손봉기·윤성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