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필드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없어진 두 다리는 내 삶을 가로막지 못하죠. 골프채를 휘두른 뒤 균형 잡기가 어렵지만, 비틀거릴 때 남보다 한 발짝 더 내디디면 됩니다.”
로즈 벨드먼(25)은 열 살이던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건물 잔해에 깔렸다. 당시 고아원에서 살던 벨드먼은 흔들리던 건물 3층에 오도 가도 못 하는 세 살 여자아이를 구하러 올라갔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던졌고, 자신도 뛰어내리려 했다. 그 순간 건물이 무너졌다. 콘크리트 덩어리가 그의 다리를 덮쳤다. 한쪽 다리는 무릎 아래, 나머지 한쪽은 허벅지 아래를 절단했다.
이후 그는 미국인 벨드먼 부부에게 입양됐고, 아버지와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성장기 딸에게 “너는 보통 사람(normal)과 다를 바 없다”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골프장에서 딸은 아버지보다 공을 더 멀리 보냈고, 고등학생 때는 골프팀 주장이 됐다. 양다리에 끼운 의족 부분 길이가 달라 밸런스 잡기가 어렵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벨드먼은 7일(현지 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로크빌의 오크먼트CC에서 개막한 US 어댑티브 오픈에 여성 복수 절단 부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했다. 벨드먼을 포함해 골프를 통해 삶을 긍정하고, 도전하고, 즐기는 전 세계 골퍼 96명이 참가했다.
US 어댑티브 오픈은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최하는 ‘내셔널 타이틀’ 장애인 골프 대회다. 2022년 시작해 4회째로 역사는 짧지만, 장애인 골프 대회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선수들의 장애 유형을 상체 손상, 하체 손상, 복수 절단, 지적 장애 등 8분야로 나눠 경쟁한다. 사흘간 3라운드를 치러 분야별 우승자와 전체 종합 챔피언을 가린다. 티잉 구역부터 페어웨이, 러프, 벙커 등 모든 조건이 보통의 골프 대회와 다를 바 없다. 벙커에 쉽게 진입할 수 있게 홀컵 반대쪽 방향 턱이 완만한 정도다. 단, 남녀 구분과 장애 유형에 따라 코스 전장이 다르게 세팅된다.
러셀 에이드(18)는 선천성 손 기형 때문에 나기 전부터 오른손 다섯 손가락이 전부 붙어 있었다. 두 살 때 엄지손가락 분리 수술을 받은 뒤, 엄마가 만들어준 맞춤 장갑을 끼고 샷을 한다. 퍼팅할 땐 일반 골퍼들처럼 장갑을 벗는다. 그의 표현대로 ‘물갈퀴’ 같은 손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드라이브 샷 비거리가 300야드에 달하는 그는 “드라이버 정확도가 좀 떨어지지만, 어프로치와 퍼트 같은 쇼트게임에 자신 있어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뇌성마비와 뇌졸중을 함께 겪어 오른쪽 몸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빈스 바이저(37)는 기적 같은 수술 끝에 새 삶을 되찾고 골프장에 섰다. 뇌전증 발작까지 극심해 열여섯 살 때 뇌 양쪽 연결을 끊는 ‘반구 절제술’을 받았다. 다행히 발작이 멈추고 인지 기능에도 문제가 없었다. 바이저는 북미 한팔(one armed) 골프 챔피언십에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고, 수차례 우승을 따낸 뒤 이번 대회에도 출전했다.
닉 키멜(35)은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 복무 중 폭발물 사고로 양쪽 다리와 왼팔을 잃었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는 “집에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도 있는데, 불평할 것 없다”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살아간다. “그저 골프 스코어가 좋지 않으면 좌절하는 평범한 골퍼일 뿐”이라고 한다. 그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들러 전우들을 만난 뒤 대회장에 왔다.

우리나라에선 이승민(28)·허도경(17·이상 남자부), 김선영(25·여자부) 세 명이 출전했다. 이승민은 2017년 국내 최초로 발달 장애인으로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정회원이 됐다. 이후 장애인 대회와 일반 대회(초청 자격)를 오가며 골프 선수로서 다른 장애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실제로 허도경과 김선영 모두 이승민을 롤 모델 삼아 골프에 빠진 경우다.
이승민은 2022년 이 대회 초대 챔피언에 올랐고, 이후 두 대회에선 영국의 킵 포퍼트(27)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뇌성마비 골퍼인 포퍼트는 작년 5월부터 세계 장애인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1라운드에서도 포퍼트는 11언더파로 리더보드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3언더파 6위에 오른 이승민은 “남은 이틀 동안 타수를 줄여 우승컵을 빼앗아오겠다”고 했다.
☞US 어댑티브 오픈
US오픈과 US여자오픈 등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가 2022년 창설한 장애인 골프 대회. 매년 96명이 8개 장애 분야에서 3라운드로 성적을 겨룬다. 미국 ‘내셔널 챔피언십’으로서 장애인 골프계에서 메이저 대회로 간주된다. 장애인 스포츠계의 흐름을 반영해 ‘상황에 맞게 적응한다’는 뜻의 어댑티브(adaptive)를 대회 이름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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