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성지, 남해 관음포]3. 불교 융성한 남해, 대장경 판각 적지
대장경 판각지로 추정되는 고현면 일대에 문화재 지표 발굴 조사를 여러 차례 실시한 끝에 전 선원사지와 백련암지, 안타골 유적, 전 관당성지, 전 망덕사지 등이 고려대장경 판각 시기에 존속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불교 3대 관음성지, 남해
김봉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대장경 판각지로 남해군이 주목받는 이유로 지리적, 경제적 요건을 들고 있지만 문화적, 사상적 토대 없이 고려대장경을 제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남해군은 그러한 요소를 모두 갖춘 최적의 장소였다"고 말했다.
남해군(이하 남해)은 지리적으로 남해안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에 속해 있었다.
남해라는 지명은 불국사를 창건한 신라 경덕왕 때 처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하동, 거창 등의 경남의 지명들이 탄생했다. 그전에 남해는 '전야산군'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불교의 중요한 경전인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구하러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따라 남쪽으로 스승을 찾아 만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경전에는 인도의 남쪽 바다에 있는 보타락가산이라는 곳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월관음보살도'이다.
우리나라에도 따듯한 남쪽의 바닷가에 관음의 성지가 있다고 믿었는데, '남해'와 '관음포'라는 지명이 거기에서 유래됐다고 본다. 관음포라는 지명은 관음의 포구라는 뜻이다.
섬인 남해에 신라, 고려시대에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 많고, 강원도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에 남해 보리암이 속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김 위원은 "삼국시대부터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한 남해는 고려대장경 제작에 필요한 불교계의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판각지 추정 부지 터 발굴
남해가 대장경 판각지라는 확실한 물증은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대장경 판각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유물들이 남해 고현면 일대에서 잇따라 발굴되면서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그 중 '남해 전 선원사지'는 고려시대 별서 건물이 있던 터다. 별서는 고려시대 귀족이 휴양을 위해 집 이외에 별도로 마련한 건물이다.
선원마을에 있는 절터이기 때문에 '전 선원사지'라고 한다.
전 선원사지는 구릉 기슭의 경사진 땅을 4단으로 경계를 지은 뒤 건물을 세웠다. 유적지 내에서는 모두 17동의 건물터와 후원, 연못 등의 시설물이 확인됐다. 이곳에서 고려 문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원숭이 모양 청자 연적과 함께 12~13세기에 사용한 유물이 발견됐다.
눈길을 끄는 건, 선원사지의 뒷산에 있는 백련암지의 존재다. 백련암지는 가장 윗단에 본당을 배치하고 아랫단에 출입 시설과 계단을 설치한 소규모 암자로 추정된다.

백련암지에는 시주의 대상과 목적, 주체가 분명하게 기록된 명문 기와가 대량으로 출토돼 사찰의 성격을 가진 건물로 추정된다. 산 아래에 있는 전 선원사지에서도 동일한 기와 조각이 출토돼 두 곳이 서로 연관성이 있는 건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시주 금액으로 지급된 은병 1개의 가치는 포목 100필에 해당하는 고액 화폐로 명문 기와에 적힌 시주자가 고려의 중앙 관료나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즉, 대장경이 판각될 시기에 남해 고현면 일대에는 중앙의 귀족이나 지배층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상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두 유적의 연관성과 각 유적에서 조사된 건물지의 성격,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전 선원사지는 대장경 판각 책임자인 정안이라는 인물이 남해로 퇴거해 창건한 '정림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백련암지 또한 정안이 창건한 '강월암'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으나 이를 실제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외에도 전 관당성지와 안타골 유적에서도 대장경 판각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와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됐다.

◇인쇄술, 출판술…판각지 남해 뒷받침 연구 활성화
남해군은 지난 2023년 10월 '고려대장경 판각지의 현대적 재발견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학계와 불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참석한 불교계와 관련 학자들의 여러 사료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고려대장경 판각지가 남해군'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으며 특히 "고려대장경 판각지 복원 사업 등을 통해 남해를 현대 기술을 접목한 체험의 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됐다.
남해군도 고려대장경 판각지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경남도의 지역 특화사업 연구용역 대상지로 남해군이 선정되면서 복원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됐다. 남해군은 이를 통해 향후 고려대장경 문화거리 조성, 산닥나무 자생지 복원, 화방사 사찰 문화사업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판각 전시·체험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관광도시, 남해군의 새로운 체류형 관광 모델로 적극 육성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임명진·김윤관기자 sunpower@gnnews.co.kr

김봉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대장경 판각 문화 복원해야"
김봉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고려사에 기록된 대장경 간행에 참여한 정안이라는 인물과 당대 불교계 명승들의 남해군에서 교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위원은 "대장경은 불교의 유산이므로 불교계에서 제작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면서 "그중에서 당대 명승인 진각국사 혜심 스님과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의 남해에서의 행적을 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삼국유사로 친숙한 일연의 비문인 '인각사보각국사비문'에는 '기유년(1249)에 재상 정안이 남해의 집을 희사하여 사로 삼아 정림이라 하고 스님을 초빙해 주관하도록 했다'라고 적혀 있다.
일연은 1249년부터 1261년까지 왕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상경할 때까지 12년간 남해에 거주했다.
김 위원은 "비문에 나오는 일연스님의 제자 명단과 대장경 각수 명단을 비교한 결과, 다수의 제자가 판각에 참여해 590여 장의 경판을 판각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연은 1281년에는 유명한 '삼국유사'를 간행했으니, 어쩌면 남해에서의 경험이 '삼국유사'라는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김 위원은 "고려대장경 판각지, 남해군이 현대적 의미의 판각 문화를 되살려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목판으로 인쇄했던 옛 고문헌을 다시 복원하는 사업들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향도 소개했다.
김 위원은 "대장경 판각은 목공과 제지, 서예와 서각, 인쇄와 제본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목판 인쇄 문화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금속공예, 나전칠기 등 전통 공예와도 결합할 수 있다"면서 "이를 복원해 많은 사람들이 남해를 찾아올 수 있도록 전시와 교육, 체험 기능을 갖춘 관광 자원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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