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점유하라 연대하라 [김탁환 칼럼]

한겨레 2025. 7. 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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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칸 오즈겐, 원더랜드, 2016, 단채널 비디오, 3분 54초. 전남도립미술관

김탁환 | 소설가

전남 광양시 광양중앙도서관에서 ‘관계와 연대의 인문학’이란 주제로 삼주 연속 특강을 했다. 강의를 마무리할 즈음 수강생이 뜻밖의 소감을 밝혔다. 전남도립미술관 기획전을 최근에 봤는데, 출품작들이 내 강의와 매우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완행열차를 타고 광양에서 순천을 거쳐 곡성 집으로 돌아가 불볕더위에 시달린 고구마밭에 물을 줄 마음이 급했지만, 기차표를 바꾼 뒤 미술관으로 향했다. 기획전 제목이 강렬했다. ‘오큐파이(Occupy): 우리는 연결되고, 점유한다’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진 바야흐로 점유의 나날이었다. 차들이 오가는 도로나 삼삼오오 모여 환담하는 공원이나 광장으로,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십만명이 운집했다.

전쟁과 참사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4년 12월3일 불법 계엄도, 몇몇 눈 밝은 이들이 경고했었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겐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속보가 나온 뒤 적지 않은 시민이 여의도로 달려갔다. 경찰은 국회의사당 출입을 원천봉쇄하려 들었고, 시민들은 경찰들을 에워싼 채 항의했다. 계엄군을 태운 군용 차량을 막아서기도 했다. 시민들이 국회 앞을 점유하지 않았더라면, 육로를 통한 계엄군의 진입이 손쉬웠을 것이다.

서울 여의도로 모여든 시민은 나이도 계층도 직업도 다양했다.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함께 머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찍이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적었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방식에 기대자면,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그들을 따라 다채로운 물건들이 온다는 것이고, 그것들을 활용한 특별한 활동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응원봉이 그랬고 음료 선결제가 그랬다. 광장의 새로운 문화였다.

이 뒤섞임을 극적으로 보여준 곳이 바로 남태령이다. 경찰은 불법이라며 막아섰지만,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과 대다수 여성 시민들이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우며 버텼다. 점유는 물건이나 영역이나 지위를 차지한다는 사전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시회를 기획한 김세령 학예연구사의 설명에 따르면, 점유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 비어 있던 자리에 이야기를 만들고 침묵 위에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겨울 남태령에서 만들어졌을까. 얼마나 따듯한 목소리가 고개를 넘나들며 추위를 녹였을까.

점유는 우리에게만 중요한 활동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분쟁과 참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라와 지역에 따라 이야기와 목소리는 제각각이겠지만, 난관을 극복하는 밑받침은 똑같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연결되려면 다가서야 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고 말을 붙여야 하고 눈인사를 건네야 한다. 세 가지 출품작이 나를 먼저 끌어안았다.

오픈 그룹, Repeat after Me Ⅱ, 2022-2024, 2채널 비디오 설치, 가라오케, 57분 31초. 전남도립미술관

우크라이나 예술가들로 구성된 ‘오픈 그룹’의 ‘나를 따라 해보세요Ⅱ’는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는 작품이다.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짧고 충격적인 의성어가 날아든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시민이 화면에 직접 나와 총이나 포탄과 같은 무기가 내는 소리를 입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관객들은 마이크 앞에서 그 소리를 거듭 따라 한다. 생소한 의성어를 말할 때마다 살상 무기로 가득 찬 전쟁터를 머릿속에 그릴 수밖에 없다.

쿠르드계 튀르키예 작가 에르칸 외즈겐의 ‘원더랜드’는 기이한 침묵으로 관객을 이끈다. 영상이 시작되면 전쟁터가 된 시리아 북부 마을에서 탈출한 난민 소년 모하메드가 등장한다. 모하메드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관객들은 소년의 격한 몸짓을 통해 끔찍한 체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권승찬의 ‘무기력한 풍경’에선 목탄으로 그린 풍경화들이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운다. 그림에는 나무와 풀과 흙과 돌은 많지만, 사람은 없다. 평범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풍경들은 모두 피비린내와 울음으로 가득 덮였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지, 매장지, 수장지를 답사하고, 유족과 전문가 인터뷰를 거쳐 완성한 작품들인 것이다. 권 작가는 주장한다. ‘우리는 과거 수많은 희생자의 터전 위에 현재를 살고 또 살아간다.’

권승찬, 무기력한 풍경-매티재, 2025, 판화지에 아크릴릭, 목탄연필, 70.5×100㎝, ⓒ 권승찬. 전남도립미술관

미술관을 나오며 스스로 물었다. ‘빛의 혁명’을 이끈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는가. 현실을 꿰뚫으며 예술적 점유를 선보인 국내외 작품들을 감상한 후 새로운 답을 얻었다. 빛은 해와 달과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아니라, 분노하며 광장으로 모여든 이들의 간절한 걸음걸음에서 왔다. 세상 곳곳은 위태위태 어둡고, 점유해야 할 곳은 여전히 많다. 참된 연대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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