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돌봄은 제도 이전에,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이진영의 '복지 키워드로 풀어보는 영화세상' 열 번째 이야기는 2023년 개봉한 박홍열·황다은 부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낸 마을 교사들의 3년을 담아낸 이 작품은 단지 '방과후 돌봄'이라는 기능적 영역을 넘어서, 제도 밖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관계와 마음, 그리고 돌봄의 본질을 조명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도토리 마을 방과후'는 감독 부부가 실제 자녀를 맡겼던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교사들은 자격보다 관계로, 규정보다 실천으로 돌봄을 이어갔다. 공식 경력조차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아이들의 하루를 함께 지켜낸 시간은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상업적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전주국제영화제와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소개되며 조용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10년을 일해도 경력 1년도 인정받지 못해요"라는 교사의 고백은 돌봄 노동이 얼마나 오랫동안 제도의 외곽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이들 곁을 지켜온 이들이, 제도가 비워둔 자리를 조용히 채워왔다. 이런 현실은 돌봄 현장에서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문제이며 제도 밖 돌봄은 여전히 경계 밖에 머물러 있다.
2025년 여름, 부산에서 잇달아 발생한 두 건의 비극적인 화재사고는, 제도가 비워둔 자리를 누가 어떻게 메워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첫 번째는 6월 24일 새벽, 두 번째는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7월 2일 밤이었다. 두 사건 모두 초등학생 자매가 집에 홀로 남겨진 채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당시 부모는 생계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긴급 지원은 뒤따랐지만, 모든 개입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그중 한 자매의 어린 동생은 장기 기증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그날의 공백은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믿으며, 아이를 홀로 두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 그 순간, 부모는 어디에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돌봄의 구조는 어쩌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손길은, 정작 가장 절실했던 순간과 공간에 닿을 수 있었을까.
사고 이후, 부산시는 '24시간 아이돌봄서비스' 확대와 전담TF 구성을 발표했다. 심야·새벽 시간대(22시~다음날 6시)를 포함해 돌봄 가능 시간을 넓히고, 돌보미 수당과 취약계층 부담 완화 등 실효성 확보 방안도 마련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간제 어린이집과 입원아동 돌봄서비스 확대도 추진 중이다.
제도의 대응은 진전이지만, 실효성과 지속성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생계를 위해 집을 나선 부모에게 실질적인 선택지가 생기는가. 돌봄을 감당하는 이들은 여전히 불안정한 노동 조건 속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지금 설계되고 있는 이 체계는 과연 그날의 공백을 채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중요한 건 제도의 크기가 아니라, 그 손길이 닿는가다.
이 논의의 중심에는 결국 한 문장이 놓인다. "돌봄은 제도 이전에,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지 않은 시간과 공간은, 우리 사회가 비워 둔 자리가 아닐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돌봄은 자격으로 채워지는가, 아니면 곁에 머무는 마음으로 완성되는가'.
'누군가의 부재 앞에서, 그 자리를 지켜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돌봄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