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연단, 오영훈의 연단 [전국 프리즘]


서보미 | 전국팀 기자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한달 기자회견에는 연단이 없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맨바닥에 놓인 책상에 앉아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고 나선 가까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기자들과 눈을 맞춰가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대변인이 질문할 기자를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명함을 추첨하지 않을 때는 이 대통령이 “여성으로 하겠다”, “통신사에게 기회를 주겠다”며 직접 기자를 가리키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연단이 없어서 뒤쪽에 앉은 사람은 앞사람 뒤통수만 봤다”거나 “명함 추첨을 하니 지역 언론에 질문이 쏠렸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온라인에는 “대통령 기자회견이 원래 재밌는 거였냐”, “보기 편하다”는 시민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보면서 이틀 전 있었던 또 다른 기자회견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1일 오영훈 제주지사의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애초 행사를 준비한 대변인실은 “도민과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뜻으로 화사한 꽃이 놓인 책상을 단상 아래 맨바닥에 뒀습니다.
하지만 행사장에 들어선 오 지사는 “기자회견을 앉아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고, 곧바로 대변인이 쓰던 연단이 단상 중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 서서 준비해온 글을 읽은 뒤 오 지사는 책상에 앉아 대변인이 지목한 기자들의 질문을 40여분간 받았습니다.

그래도 취임 3주년 소감을 밝히는 공식적인 자리이니 격식을 갖추는 게 도민에 대한 예의라고 오 지사는 판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석에서 올려다본 오 지사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해 보였습니다.
대통령실보다 먼저 연단을 없애고, 도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단과 지사 사이 거리를 좁히려 한 공무원들의 아이디어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 지사가 3년간 알고 지낸 기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직접 질문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건 형식보다 내용입니다. 갓 취임한 이 대통령에게 이번 기자회견이 국정 운영 방향과 다짐을 국민에게 알리는 자리였다면, 취임 4년차인 오 지사에게는 지난 3년의 성과를 짚고 남은 1년의 과제를 전달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4천자가 넘는 오 지사의 기자회견문은 ‘최초’, ‘쾌거’, ‘최고’로 수식된 실적만 가득했습니다. 인구 감소나 주거 불안정, 낮은 소득, 기후위기, 환경오염 등 도민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에 대한 공감과 고민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충분하지도 않았습니다. 관광객에게 세금처럼 환경보전분담금을 걷어 제주의 환경보호에 쓰겠다던 3년 전 약속을 두고 오 지사는 “공약이라고 해서 도민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재검토하겠다고만 말했습니다. 사실상 공약을 접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지도, 도민에게 이해해달라며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 지사는 최근 아파트의 층수 제한을 15층에서 25층으로 완화한 조례 개정이 한라산 조망권을 해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도민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진행했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도민 대부분의 일상이 왜 좋아지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제일 자신 없는 분야”라거나 “시점은 특정하지 못하는 점 이해 바란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답변을 피하지 않은 이 대통령의 태도와 다릅니다.
이재명 정부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적극 밝힌 오 지사가 새 정부의 탈권위적인 소통 방식도 한번쯤은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제주 도민도 도지사의 기자회견을 재밌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제주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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