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한 획’ 정현 작가 예술혼 엿본다
침목·폐목·아스콘·폐철근 활용 작품 한자리에

[충청타임즈] 한국미술의 진취적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정현 작가의 조형 여정을 함축적으로 소개한 전시가 펼쳐진다.
충북 청주시립미술관은 오는 27일까지 제2회 김복진미술상 수상 작가 정현 초대전 '낮은 물질들로 쓰여진 시'를 선보인다.
김복진미술상은 청주 출신 정관(井觀) 김복진(1901-1940) 선생의 작품 세계와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국 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두 번째 수상자로 정현(1956년생) 작가가 선정됐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쓸모를 다해 버려지고 결코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물질들이 겪어낸 시련과 견딤의 시간, 그 깊고 조용한 흔적들을 의미한다.
작가는 침목, 폐목, 아스콘, 폐철근 등 기존의 용도를 다해 버려져 삶의 표면에서 지워진 것들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해왔다.
그런 재료들을 '낮은 물질들'로 명명해 이들이 겪은 시련과 인고의 시간 등을 시처럼 함축해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1980년대 후반의 초기작부터 2025년 드로잉 신작에 이르기까지 약 8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만져지는 시간: 질감은 생(生)을 형상화한 것 △조각 그리고 드로잉 △야외조각 등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먼저 첫 번째 섹션에서는 자연재해와 해체, 철거 등이 남긴 상흔을 품고 있는 자연석으로 만든 작품과 해안가의 돌들을 수집해 만든 백색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사실주의에 경도됐던 조형 의식을 벗어나 실존의 근간을 드러내는 선조 작업, 즉 뼈대만 남은 인체 표현으로 이어진 그의 작업을 선보인다.
정현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콜타르 드로잉으로, 석유의 찌꺼기인 콜타르는 폐기 직전의 물질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침전된 흔적과 응축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이 물질을 매체로 삼아 화면 위에 얇게 펼치고 겹치고 긋는다. 얇게 펼쳐지거나 짙게 뭉쳐진 콜타르는 시간과 감정의 그림자를 남긴다.
정현의 드로잉은 조각을 위한 밑그림이 아닌 말 대신 툭 던져놓는 하나의 시구(詩句)에 가깝다.
야외에서는 10점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원규 관장은 "정현 작가는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생을 다하는 물질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희미하지만 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며 "삶의 이면에서 밀려나 잊히고 쓸모를 다해 버려진 것들 속에서 그는 사라짐의 언어를 읽고 다시 시작되는 생의 에너지를 포착했다"고 말했다.
정현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조소과에서 수학하고 이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1992년 원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정현 조각전'을 시작으로 2001년 금호미술관 '정현',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2016년 프랑스 파리 IBU 갤러리, 팔레 루아얄 정원, 생-클루 국립공원 '서 있는 사람', 2024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출품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남연우기자 nyw109@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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