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매매' 기자·언론사 압수수색에도 조용한 언론계

정민경 기자 2025. 7. 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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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다량 매수→호재성 기사→매도…금융당국, 20여 명 기자 수사
선행매매 사태 단독 보도 KBS 기자 "'같은 기자지만 너무 한다' 생각"
민언련 "언론계 자본시장 교란 행위 반복…언론 역시 자정 노력 외면"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KBS 7월7일 송수진 기자의 단독 기사 '기자 선행매매 수사, 특징주 100여 개 뒤진다' 보도 화면 갈무리.

최소 20여 명의 기자들이 주식을 다량 매수한 뒤 호재성 기사를 보도해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KBS가 단독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대다수 언론사에선 관련 기사를 찾기 어렵다. 언론의 자정 노력 없이는 유사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는 지난 4일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 특정 상장사 주식 선행매매 혐의를 받는 기자들과 일부 언론사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전·현직 기자 20여 명이 취재하면서 알게 된 기업 내부 정보로 먼저 주식을 사고, 기사를 쓴 다음 팔았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간지, 경제지, 인터넷 언론사 등 여러 회사가 포함됐고 일부는 수사를 받던 중 퇴사했다.

KBS는 지난 7일에도 금융 당국이 돌발 호재나 풍문에 주가가 급등락하는 이른바 '특징주' 기사를 많이 쓴 기사를 중점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으며, 의심되는 종목이 100개가 넘어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KBS는 “한 기자는 주식을 다량 매수한 뒤, 호재성 기사를 쓰고 매도해 시세차익을 봤다. 이걸 11달 동안 반복하며 10개 종목에서 5억 원 이상 벌었다는 것이 금융당국 수사 결과”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여러 명의 기자들이 한 그룹으로 움직이며 특정 특징주 기사를 비슷한 시점에 출고한 공모 정황도 눈여겨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 관계자는 연루 매체와 기자 관련 정보를 묻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수사가 진행 중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자본시장법 178조에 따르면 누구든 부정한 수단이나 기교를 써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이익의 4~6배에 달하는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에 따르면 취재 활동 중 취득한 정보를 보도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고, 취재·보도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개인의 이익 추구에 사용해선 안 된다.

▲7월7일 KBS 보도 화면 갈무리.

KBS의 첫 보도는 당일 KBS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로 나타났다. 포털 네이버 기준으로도 현재까지 900여 개의 공감, 7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많은 관심과 분노를 불렀다. 그러나 이를 인용한 보도는 소위 중앙 언론 중에선 서울신문이 유일하다.

해당 보도를 한 KBS 송수진 기자는 8일 미디어오늘에 “이런 선행매매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기자들이 작전 세력과 함께 '플레이어'로 뛰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렇지만 소문 차원이었고, 금융당국이 대규모의 기자 수사에 나선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 여러 명이 공모를 하고, 여러 기자가 거의 동시에 특정 종목에 대한 기사를 쓴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기자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타사의 인용 보도를 찾기 어려운 상황을 두고 송 기자는 “다른 언론사가 받아쓸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면서도 “한국거래소 기자실에서 마주치는 기자들, 또 다른 기자들을 위해서라도 이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찰나의 잘못된 판단이 커리어를 망치고 나아가 기자 집단 전체에 먹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송 기자는 이어 “'코스피 5000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작전'을 하면 안 되고, 기자들이 참여해서도 안 된다”며 “남은 건, 금감원 특사경의 수사 결과를 보도하는 일이다. 이 때는 더 많은 언론사가 함께 이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고 전했다.

언론시민사회단체에서도 언론의 자정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8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사법당국이 언론의 불법행위를 봐주며 엄벌하지 않고, 언론 역시 자정 노력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KBS 인용 보도가 소수에 그쳤다고 지적하며 “언론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기는커녕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한데 어떻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바랄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지금이라도 수사당국은 수사대상 언론사와 기자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고, 책임자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해당 언론사들 역시 국민과 독자에게 사과하고 내부 조사와 더불어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언론이 언론의 책임을 저버릴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온다”고 당부했다.

[관련 기사: '주식 호재' 보도로 부당이득 혐의, 매일경제 기자 퇴사]

실제 최근에도 유사 사례가 있었으나 해당 기자가 퇴사했을 뿐 소속 언론사의 조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3월 매일경제 기자는 자신이 매수한 주식 종목에 대해 호재성 기사를 작성하고 매도하는 방식의 부정거래 혐의로 고발된 후 퇴사했다. 당시 매일경제는 사측의 진상조사 등 조치 여부를 묻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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