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만파식적(萬波息笛)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5. 7.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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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신문왕 즉위 이듬해인 임오년(682년) 5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폐하, 해관(海官) 파진찬 박숙청 아뢰오. 무슨 일인고? 동해 가운데 있던 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 내려와 파도를 따라 왔다 갔다 합니다. 일관 김춘질은 무슨 연고인지 점을 쳐 그 결과를 짐에게 고하라. 돌아가신 임금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며, 또 김유신 공이 33천의 한 아들이 되어 지금 내려와 대신(大臣)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께서 덕을 같이 하여 성을 지킬 보배를 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바닷가로 나가시면 반드시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보배를 얻으실 것입니다.

일관의 점괘를 들은 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달 7일 이견대로 가서 그 산을 바라보고 사신을 보내 살펴보게 했다. 산의 형체는 거북이 머리처럼 생겼고 그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사신이 와서 아뢰자 왕은 감은사로 가서 묵었다. 이튿날 오시에 대나무가 하나로 합치자, 천지가 진동하고 이레 동안 폭풍우가 치면서 날이 어두워졌다가 그달 16일에야 바람이 멈추고 파도가 가라앉았다.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으로 가니 용이 검은 옥대를 가져다 바쳤다. 왕이 용에게 물었다.

이 산과 대나무가 떨어졌다가 다시 합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친 후에야 소리가 나게 되어 있으니,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얻어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평화로울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께서는 바닷속 큰 용이 되셨고 김유신은 또 천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께서 한마음이 되어 값으로는 정할 수 없는 이런 큰 보물을 내려 저에게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왕은 놀라고 기뻐하며 오색 비단과 금옥으로 답례하고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산에서 나오니, 산과 용이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왕은 궁궐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졌으므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신문왕은 만파식적을 이렇게 얻는다. 삼국유사 권제2기이편의 기록이다.

이견대 난간에 앉아 푸르게 열린 바다를 본다. 대왕암으로부터 파도가 밀려와 철썩, 철썩 소리의 무더기를 부려놓는다. 역사의 귀를 열고 듣노라니 한낱 돌무더기로부터 들려오는 바다의 철썩임이 대왕의 근심 소리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내가, 갑과 을이, 푸른 깃발과 붉은 깃발이 찢고 헐뜯고, 반목하고 대립하는 이 땅의 오늘을 뉘라서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이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생성되는 소리란 틈 없이 뭉쳐진 공동체의 상징일 터! 만파식적은 어디 있는가? 법원에 있는가, 경찰서에 있는가? 천존고는 사라지고 만파식적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밖의 억압과 안의 욕망으로 뒤범벅된 그대 마음 깊은 곳, 폭력의 소음을 절간 마당 쓸 듯 쓸어 내보라.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 소리 들리리니. 눈 감고 세월 저편 신라적 하늘을 본다. 기러기 한 마리 가물가물 가장자리 하늘을 잡아당긴다. 신의 콜링(calling)처럼 누군가 만파식적을 불어 철새의 하늘길을 밝혀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