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지게미의 변신] (3) 술→젖소→치즈…호주의 ‘순환형 양조 생태계’
태즈메이니아서 생산하는 곡물 10% 사용해
위스키 증류하고 남은 부산물을 가축 사료로
증류소 지을 때부터 지역 낙농가와 소통이 비결
낙농가가 생산한 치즈는 위스키 안주로 사용

그린뱅크스는 연간 약 300만ℓ의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신생 증류소다. 이는 태즈메이니아 전역 150개 증류소의 총 생산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증류소를 지을 때 증류 후 발생하는 술지게미를 효과적으로 수거하고 공급하기 위한 전용 처리 설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휴 록스버그 그린뱅크스 공동대표는 “태즈메이니아에 있는 증류소는 대부분 가족 단위의 소규모로 운영된다”며 “우리는 증류소를 설립할 때부터 부산물 활용 방안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 술지게미를 가축 사료로 활용하는 사례는 한국보다는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술지게미는 수분이 80% 이상으로 부패 위험과 운송 부담 때문에 대부분 탈수 후 건조한 고형물 형태로 가공해 가축 사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그린뱅크스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증류 직후의 액상 술지게미를 그대로 지역 농장에 공급한다. 탈수 장비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부산물을 즉시 자원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증류소 건립 단계부터 낙농가와 협의한 그린뱅크스의 노력과, 협력 농장인 브림 크릭 데어리(Bream Creek Dairy)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다. 그린뱅크스가 처음으로 수분을 함유한 술지게미를 사료로 공급하겠다고 제안했을 당시, 많은 낙농가는 기존 사료 공급 시스템으로는 수분 함량이 높은 부산물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그린뱅크스는 해당 부산물의 영양 성분을 분석해 그 결과를 공유했고, 브림 크릭 데어리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사료 체계 도입에 나섰다.

농장은 액상 사료를 저장할 수 있는 전용 탱크와 사일리지·곡물과 함께 액상 사료를 혼합해 젖소에게 급여할 수 있는 ‘믹서 왜건’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일반 농가의 건사료 중심 체계와는 다른 구조다. 현재 농장은 젖소 800마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향후 두수를 늘릴 계획이다. 이곳은 하루 최대 9만ℓ의 술지게미를 받아 보관하고, 곧바로 사료로 활용한다. 간혹 “술지게미를 먹으면 젖소가 취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역시 증류 과정을 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증류 과정에서 알코올은 대부분 증류탑을 통해 분리되어 추출되며 남는 술지게미에는 알코올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존 슬래터리 헤드디스틸러(수석증류사)는 “증류 과정에서 발생한 술지게미는 증류소에서 보관했다가 농장으로 직접 운송해 젖소 사료에 사용된다”며 “술지게미는 폐기물이 아니라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고영양 부산물로 가축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그린뱅크스는 농장이 생산한 치즈를 증류소를 찾은 방문객에게 위스키와 함께 제공하는 특별한 체험도 제공한다. 그린뱅크스의 노력은 단순한 부산물 재활용을 넘어 하나의 지역 식문화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태즈메이니아 곡물→술→젖소→우유·치즈→증류소의 안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다. 한편 그린뱅크스는 태즈메이니아산 보리, 밀, 호밀, 귀리, 옥수수 등 곡물을 원료로 하루 24시간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연간 태즈메이니아에서 생산한 곡물 10%를 사용한다.
위스키 한 잔의 여운이 치즈 한 조각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곳.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시작된 이 작은 실험은 술 이후의 농업과 지역이 공존하는 미래형 식문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태즈메이니아=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년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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