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기초과학 없는 AI 대전환 정책은 허상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수장과 핵심 관료들에 산업계에서 IT 연구개발을 수행했던 인사들로 채우면서 인공지능(AI)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며,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AI는 분명 현재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며 곧 많은 산업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것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연구개발 예산과 정책적 관심이 AI라는 단어에 쏠리는 현상은 위험하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며 오히려 한국 과학 생태계의 파괴를 가속할 가능성도 높다.
기초연구 없이 쌓아 올린 기술은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가 진정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려면 유행을 좇기보다 AI 기술의 기반이 되는 컴퓨터 과학 기초에 대한 투자,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기초과학 투자가 절실하다.
AI 기술은 컴퓨터 분야의 연구 분야이자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강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컴퓨터 과학 기초 분야인 하드웨어 연구에 대한 정책은 현재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 표면의 성과에 집착하는 과학 정책의 함정
오늘날의 과학기술 정책은 '빠른 성과'와 '보여줄 수 있는 수치'에 중심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 당장 논문이 나오거나 특허가 등록되고 사업화 가능성이 있어야만 예산이 배정되는 구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초과학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연구보다 산업계의 편의를 위한 연구 테마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정치권과 관료,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철의 삼각형' 구조는 이러한 편향을 더욱 고착시키고 있다.
AI 대전환이라는 이번 캐치프레이즈도 마찬가지다. 물론 AI는 현재와 미래에 걸쳐 사회 각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기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AI에 투자하는 방식은 전략적이라기보다는 유행에 편승하는 것에 가깝다.
기초 연구와 연계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AI 투자는 일회성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더 발전할 연구 분야들의 소멸도 촉진한다.
● 진정한 기술 패권은 기초과학에서 나온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많은 첨단기술(인터넷, GPS, 반도체, mRNA 백신, 양자기술, 그리고 현재의 AI 기술까지)의 그 출발점은 모두 기초과학이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쓸모 있음'이 증명되기 훨씬 이전에 '알고 싶음'이라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이 여전히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중국이 급속히 부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유망 분야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연구를 국가 전략의 핵심에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단기 성과 중심의 투자, 평가 중심의 시스템, 그리고 불연속적인 정책 흐름 속에서 기초과학의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특히 심각한 인구절벽과 청년 인재 유출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이재명 정부의 기초과학 투자 정책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현장의 과학자들은 지난 3년간 연구비 급감으로 연구를 포기하거나 후속 세대의 기초과학자 양성을 멈추고 있으며 현재의 처절한 연구 상황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아이들이 더 이상 기초과학자로서의 꿈을 접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것이다.
기초과학 살리기는 국가적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는 '기초과학 위기'에 대한 문제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탄스러울 지경이다.
● 기초과학은 비용이 아닌 국가 전략이다
기초과학은 느리고, 불확실하며 때로는 비가시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야말로 국가의 미래가 담겨 있다. 기초과학은 단순히 논문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국가의 기술 주권과 생존 전략의 출발점이다. 기술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사회에서 기초과학 없이 이룬 성과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유행에 편승해 단기 성과와 당장의 경제적 여파 위주로 투자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기초를 다지고 미래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인가.
전자는 그럴듯한 수치를 남길 수 있겠지만 후자만이 진정한 과학 강국으로 가는 길이다. 얼마나 더 강조해야 하는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국가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이다.
● 마무리하며 : 껍데기가 아닌 본질을 보라
우리는 흔히 선진국이니 과학 강국이니 말하지만 과연 그 속은 어떠한가. 과학 정책이 언론 친화성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좌우되고 자본은 연구의 잠재성보다 유행과 제도에 의해 배분되는 구조 속에서 과연 우리는 과거 과학발전의 실패한 국가들과 얼마나 다른가.
기초과학은 단순한 연구 분야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지금이야말로 유행이 아닌 본질에 투자해야 할 때다. 기초연구 없이는 AI 대전환도 없고 기초과학 없이는 미래도 없다. 지금 이 순간, 기초연구 현장을 들여다보자.
한국의 기초과학은 더 이상 미래를 위한 연구도 차세대 과학자 양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수년간 지속된 불연속적이고 단기적인 연구 정책과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AI 중심의 편향된 과학기술 투자 전략은 연구자들의 사기와 열정을 꺾고 있다.
그나마 실험실을 유지하는 기초과학자는 말도 안 되는 로또 같은 과제 선정률과 단기 성과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연구'만 반복하고 있으며 젊은 연구자들은 불안정한 생태계 속에서 연구 비전을 잃고 떠나고 있다. 이제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과학의 미래는 이미 조용히 닫히고 있는 문과 같다. 인구절벽 문제는 20년 전에도 있었다. 그 많은 정부 정책과 대책들이 과연 지금의 인구절벽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과학 정책도 다시 스스로 묻고 자문해야 할 때다.
[오경수 중앙대 약대 교수 kyungsoooh@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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