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내 행복입니다”…포항 구룡포를 바꾼 한 사람, 황보관현
“아이들과 장터에서 파전 굽던 날이 상보다 더 값졌습니다”

포항 구룡포를 중심으로 수십 년간 복지와 나눔의 길을 걸어온 황보관현 위원장(구룡포수협 지정중매인 35번·동우물산 대표)은 오늘도 이웃을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부회장, 포항시청소년재단 이사, 구룡포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을 포함해 10개 이상의 복지 관련 직책을 맡으며 그는 '생활 속 실천가'로 불린다. 그의 이야기는 수상 이력이나 직함보다 훨씬 깊고, 진한 울림을 남긴다.
△아이들과 함께 자란 지도자
황보 위원장의 활동 중심엔 늘 아이들이 있었다. 포항 구룡포는 한때 청소년 범죄와 결손 가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2006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고 아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문화활동과 복지 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주말 장터를 열고,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지역사회 안에서 공연도 열었다. 심지어 이 아이들과 함께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두 차례나 공연을 성사하게 시켰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요? 아이들을 데리고 무대에 섰을 때, 아이들이 변화되는 걸 눈으로 본 순간이죠. 그게 저에게는 상보다 더 값진 순간이었습니다."

△기부는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황보 위원장의 철학은 단순하다. "돈이 없다고 기부를 못 하는 건 핑계입니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는 걸 하면 됩니다." 그는 수산 중매인으로서 일하며 받은 포상금을 15년째 초록우산에 기부하고 있다. "금 다섯 돈 받았을 때 직원들과 나눴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했어요. 그건 돈보다 더 귀한 가치 아닙니까?"

△투명함과 설득으로 추모공원까지.
지역의 큰 민원 사업이었던 포항시 추모공원 유치에도 황보 위원장은 핵심 역할을 했다. 수십 개 단체를 설득하고, 불신을 공감으로 바꾸며 추진한 결과였다. "민원이 예상된 만큼 투명하게 움직였습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했고, 반대하던 분도 설득 끝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공공사업에서의 신뢰 구축, 시민과의 소통 방식 등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단순한 물리적 인프라 구축이 아닌, 지역민의 정서와 역사를 고려한 복지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잘살아야 남도 잘살 수 있다.
황보 위원장의 하루는 새벽 3시 30분에 시작된다. "저는 잠을 4시간밖에 안 잡니다. 아침 5시엔 이미 출근해 있어요." 그는 외국 여행도 거의 다니지 못했지만, "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불이익을 받는 거래처를 생각하면 마음 편히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선한 영향력은 연결된다
황보 위원장이 강조하는 건 '선한 연결'이다. 그를 통해 초록우산 후원이 확산됐고, 전국 단위 기부 문화가 지역에 뿌리내렸다. 그 자신도 전국후원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 중이다. 그는 말한다. "투명하지 않으면 신뢰는 없습니다. 기부는 책임입니다."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만든다
그는 후배 세대에게 말한다. "목표는 크게 세우되, 실천은 작은 것부터 하세요. 이익을 위한 봉사는 결국 의미를 잃습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처럼, 조건 없이 하는 게 진짜 나눔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꿈을 이렇게 정리했다. "내가 행복한 만큼, 내 이웃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함께 살아가는 마을, 그것이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황보관현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직함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지역을 바꾸고, 아이들을 바꾸고, 기부 문화를 바꿔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따뜻한 마음 하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