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교사도 길을 잃었다” 고교학점제 전면시행 제주 교육현장 ‘어수선’

박성우 기자 2025. 7. 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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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전면도입 고교학점제 현실과의 괴리...학생-교사-학부모 모두 혼란 호소
AI 챗지피티 생성 이미지.

올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를 두고 제주에서도 일선 학교를 중심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학생의 진로에 따라 선택권을 넓히고, 자기주도적 학습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현장에서는 괴리가 크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정책에 따른 불안감으로 치부하기엔 현실적인 여건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고교학점제란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된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기존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관심있는 분야의 과목을 선택해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해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실상 대학 강의와 유사한 시스템이다.

가령 국어 과목에서도 화법, 작문, 독서, 고전읽기, 문학 등의 세부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수학 과목에서도 미적분, 확률·통계, 기하, 경제수학, 인공지능 등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경영·금융, 보건·복지, 디자인, 문화·콘텐츠, 관광·레저 등 전문교과목을 별개로 두기도 했다.

고교학점제는 전국적으로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부터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된다. 현 1학년 학생들은 3년간 192학점 이상을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다. 교육당국은 학생별 진로·적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불안을 넘어 불만이 표출되는 양상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할 것 없이 고교학점제의 원 취지와는 별개로 냉혹한 현실에 냉정한 진단을 내놨다.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P씨(40대)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서 여름방학 이전에 이수 과목을 선택하라고 하는데, 집에서 아이가 훌쩍거리고 있더라. 20살 성인들도 진로가 뚜렷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진로를 강요하는 교육은 너무 가혹하다"고 하소연했다.

P씨는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다.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며 "학생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취지일텐데, 오히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의 미래를 미리 재단하는 것 아닌가. 전인 교육을 강조하는 것과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직접적인 당사자인 학생들의 불만은 보다 구체적이다. 제주시내권 단성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A양은 "수시와 정시를 나누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섞어버리니 학업 스트레스 2배 이벤트를 맞이한 기분이다. 생기부(생활기록부)를 1년에 두번씩 써야 하다보니 자기평가서 OO(무의미한 반복 노동을 뜻하는 은어)치게 생겼다"고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A양은 "서울권 대학을 선호하고 대치동의 교육열과 같은 한국 교육 전반적인 문제는 정작 손도 대지 못했으면서 애매하게 미국 교육을 따라하니까 이도저도 아니게 됐다"며 보다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시외권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1학년 B양은 "수행평가와 지필고사 시즌을 겹치게 커리큘럼을 짜니까 학생들이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며 "다른 나라 교육시스템을 비슷하게 따라가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정이 너무 급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5등급제로 바꾼 이유를 모르겠다. 9등급제와 비교해서 얻을 이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탰다.

직업계고 재학생 C양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보니 다양한 걸 접해보지도 못했고, 관심분야도 여러가지라서 고민 중인데 벌써부터 진로를 생각해서 과목을 선택하라는 방식은 저처럼 진로가 확실하지 않은 학생들한테는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C양은 "학교마다 선택할 수 있는 과목 수도 다르고, 특히 제주처럼 지역적으로 한정된 곳은 개설되는 과목도 적어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은 듣지 못한다. 결국 선택이라고 해놓고 사실상 선택지가 거의 없다"며 등 떠밀리듯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불안감을 내비쳤다.

또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과목 선택이 다 달라지면 같은 반이어도 수업을 같이 듣기가 어렵고,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소속감도 줄어드는 것 같다"며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와 어울리고 함께 배우는 시간도 중요한데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제주교육청 정문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전개하고 있는 전교조 제주지부. ⓒ제주의소리

교육현장의 한 축인 교사들도 아우성이다. 고교학점제가 학생에게는 부담을, 교사에게는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수강신청 지도, 진로상담, 시간표 조정, 공동과정 운영 등은 대부분 교사에게 맡겨지고 있다. 전문과목 전문성을 기르기에도 부족한데 과중한 업무가 얹혀지는 구조다.

시내권 모 고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는 D교사는 "전국의 고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로를 정했니?'라고 물었을 때 과연 몇 퍼센트나 그렇다고 말하겠나.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학교만 보더라도 진로를 뚜렷하게 끌고 가는 친구가 몇 되지 않는데, 고교학점제는 과목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 진로 변경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수시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의 경우 필수 과목이든 권장 과목이든 이수하지 못할 시 충실하게 과목을 이수한 학생과의 격차가 벌어져 불이익을 걱정할 수 밖에 없다. 고교학점제는 당초 석차 경쟁을 없애는 차원에서 절대평가를 전제로 설계됐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됐다. 기존의 경쟁 구도를 답습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본인이 원하는 과목보다는 내신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모수가 늘어나야 상위 등급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져 몰리는 과목에만 몰린다는 전언이다.

D교사는 "고교학점제 자체가 수능을 상대평가로 하고 있는 지금 현 체제에서는 취지와 목적에 전혀 맞지 않는다. 아이들의 진로에 맞게끔 강의를 만들어주고 진로를 설계해준다는 것인데, 결국은 성적 순으로 가는 것이지 않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그는 "수업 운영이나 출결 관리에 있어서도 허점이 많다. 학생들이 한 반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보니 과목별 출결을 입력해야 하고, 학생 관리에도 허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심지어 건강 문제로 수시로 병원을 오가야 해 고교학점제에 따른 출결 요건을 충족할 수 없어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전학간 학생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사들의 반발은 이미 공론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는 "고교학점제가 입시 중심 교육을 강화하고, 교육과정을 왜곡하며, 학교를 실험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며 제도의 전면 폐지를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면서 ▲보편공통교육과정 강화 ▲조기 진로 선택 강요 중단과 고등학교 3학년 진로집중제 운영 ▲초등부터 고등까지 촘촘한 학습지원 체계 구축 ▲국가책임 교육 시스템 정비 ▲학생의 자기주도적 진로 탐색을 돕는 교육활동 활성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도 지난달 25일 가진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현 고교학점제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김 교육감은 "처음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고 할 때는 환영했다. 단, 책가방을 가볍게 한다는 조건으로 찬성이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정도만 고정으로 하고 나머지는 학점제로 배우는 정도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전보다 수업이 더 늘어났다"며 "교원단체들의 지적이 맞다. 지금 상태라면 나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제주도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문제이다보니 도교육청 차원에서도 담당 연구사가 매일 출장도 가고 필요한 사안들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며 "교사들이 요구해 온 출결 관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개선 등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각각 고교학점제 도입 관련한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고, 1학년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전해듣고 있다"며 "일단 시작된 제도이니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