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빨간 한조각, 입안에 터지는 여름의 맛 ‘수박’…‘비바 라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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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이다.
이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수박을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며, 고온 건조한 곳이라 단맛도 더 강하다.
몽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도 수박을 그린 정물화,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이다.
아래쪽에 놓인 수박 조각에는 씨로 새긴 듯한 'Viva la Vida'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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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 아프리카, 고려 말 전래
동아시아·중동·남미에서 인기
멕시코 국기색 닮아 ‘국민과일’
화가 ‘프리다 칼로’ 작품 소재로''
여름철 더위 식히고 기운 돋워줘

본격적인 여름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이 계절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면 역시 수박을 빼놓을 수 없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박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뿐 아니라 중동과 남미에서도 즐겨 먹는다.
노예 제도가 있던 시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값싸고 양 많은 수박은 솔푸드(soul food) 중 하나였다. 멕시코에서는 수박이 ‘국민 과일’로 불리는데, 초록색 껍질과 하얀색·빨간색 과육이 멕시코 국기 색깔과 같아서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수박을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며, 고온 건조한 곳이라 단맛도 더 강하다.
몽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도 수박을 그린 정물화,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이다.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이 그림은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곡에도 인용됐다. 수박이라는 소재는 그가 생전에 사랑한 멕시코의 토속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이 그림엔 화면을 가득 채우듯 큼직한 여러개의 수박이 묘사됐다. 가운데 원형의 통수박이 배치돼 있고, 그 주변을 다양한 모양으로 자른 수박들이 둘러싸고 있다. 아래쪽에 놓인 수박 조각에는 씨로 새긴 듯한 ‘Viva la Vida’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수박의 선홍색은 삶에 대한 프리다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단단한 외피를 가졌지만 속은 여린 수박이 그의 불안한 내면을, 곳곳에 박힌 검은 씨는 고통을 은유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프리다는 이 그림을 완성한 지 8일 만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멕시코를 넘어 전세계에 영향을 준 화가이지만 그의 개인사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해졌고, 18세에 큰 버스 사고로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프리다의 부모는 침대에 캔버스와 거울을 달아줬고, 그렇게 시작한 그림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동경하는 예술가이자 혁명가였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굴곡에 빠졌다. 남편은 프리다의 여동생을 포함해 수많은 여자와 외도를 일삼았다. 세번의 유산으로 아이를 잃는 슬픔도 겪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삶의 고통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예술 세계는 화려하게 피어났다. 프리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이여 만세’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프리다의 작품 중에는 거울을 보며 그린 자화상이 많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40대 이후에는 정물을 주로 그렸다. 그가 그린 강렬하고 원시적인 느낌의 과일은 조국인 멕시코의 자연을 상징하면서 그가 평생에 걸쳐 집착했던 ‘생명’을 은유하기도 한다.
멕시코 현지를 방문하면 여름철 길에서 조각내 파는 수박을 흔히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멕시코인들은 수박에 라임즙과 칠리를 뿌려 먹는다. 수박은 설탕과 라임즙, 과일이나 허브를 넣은 ‘아구아 프레스카(Agua Fresca)’라는 음료 재료로도 자주 쓰인다. 수박만 넣으면 달콤한 설탕물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데 라임이 내는 약간의 산미가 풍미를 더해준다.
수박은 열을 내리고 수분을 보충해주므로 날씨가 더울 때 기운을 돋우기 그만이다. 달콤하고 시원한 맛은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준다. 온 가족이 모여 커다란 수박을 쪼개는 모습은 1인가구가 많아진 요즘에는 보기 힘들어진, 여름날 추억 한자락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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