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가 들어올린 트로피… 영화를 현실로 만들었다

미래의 챔피언감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세계 최고 자동차 경주 대회 ‘포뮬러 원(F1)’에 데뷔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로 결국 방출된다. 절치부심 끝에 F1 무대에 돌아왔지만, 팀은 객관적인 전력상 최하위권. 하지만 37세 베테랑 드라이버는 데뷔 15년 만에 생애 첫 포디움(시상대)에 오르는 영광을 안는다.
최근 극장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F1 더 무비’에서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주인공(소니 헤이스)이 연상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F1에서 일어난 실화다. 6일(현지 시각)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열린 F1 영국 그랑프리에서 킥 자우버 소속 드라이버 니코 휠켄베르크(독일)가 3위를 차지하며 2010년 데뷔 후 처음으로 포디움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포디움은 3위 이내로 입상해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피트는 영화에서 젊은 시절 F1에서 각광받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떠돌이처럼 여러 레이싱 대회를 전전하는 ‘우승 청부사’를 연기했다. 60대의 백전노장이 돼 F1 꼴찌 팀의 부름을 받고, 신참 드라이버와 갈등을 겪지만 결국 팀을 하나로 단결시키며 결국 첫 우승까지 일궈낸다.
휠켄베르크 역시 포뮬러3와 GP2 등 하위 등급 레이싱 대회를 제패하며 만 22세에 F1에 데뷔한 유망주였다. 미하엘 슈마허(독일), 루이스 해밀턴(영국) 같은 챔피언 반열에 오를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수년간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2021년부터 2년간 보장된 자리가 없는 후보 드라이버로 전락했다. 2023년 하위권 팀 하스의 부름을 받아 복귀한 그는 올 시즌 자우버로 이적했다.
F1 우승 경쟁은 전 세계에 단 20명뿐인 드라이버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차량 성능도 무시 못 한다. 상위권 팀일수록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차량 성능을 개선시키고, 이는 드라이버의 성적으로 이어진다. 차량 성능이 떨어져 예선에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한 팀은 본선 때 뒤쪽에서 출발하고, 앞에서 달리는 차량이 사고가 나는 등의 변수가 생겨야 겨우 상위권 입상을 노릴 수 있다.

휠켄베르크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소속 팀 자우버는 지난해 팀 순위 최하위였던 약체로, 올 시즌도 영국 그랑프리 이전까지 10팀 중 9위로 힘겨운 꼴찌 싸움을 하고 있었다. 휠켄베르크는 예선 성적 20명 중 19위로 제일 뒷줄에서 본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날씨가 그를 도왔다. 비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드라이(마른 노면용) 타이어와 빗길용 타이어를 적기에 교체해야 하는 전략 싸움이 벌어졌다.
이날 레이스에선 노면이 충분히 마르기 전에 드라이 타이어를 장착해 미끄러지거나 사고를 내는 드라이버가 많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휠켄베르크는 효율적인 타이어 교체 전략으로 출발 때 19위였던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리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 영국 그랑프리는 휠켄베르크가 2010년 F1 데뷔 후 239번째(본선 출발 기준)로 참가한 레이스였다. 앞서 238번의 출전 동안 한 번도 3위 이내 입상하지 못한 것은 F1 75년 역사상 최장 기록이었다. 2위 기록이 128경기임을 고려하면 휠켄베르크가 얼마나 불운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 최근 4년 연속 시즌 챔피언을 차지한 막스 페르스타펀(네덜란드)은 데뷔 후 24경기 만에, ‘F1 황제’ 슈마허는 8경기 만에 첫 포디움에 올랐다. 슈마허와 통산 최다 챔피언 등극 동률(7회)인 해밀턴은 데뷔전에서 곧바로 3위에 올랐다.
영화 속 브래드 피트는 우승을 기뻐하는 팀 동료들을 남겨두고 슬며시 자리를 떠나지만, 휠켄베르크는 이날 시상대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팀 스태프들도 펄쩍펄쩍 뛰면서 “니코! 니코!”라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휠켄베르크는 “이 자리까지 너무나 긴 여정이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고 했다. 그는 “나와 우리 팀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믿었다”며 “지금 감정은 순수한 행복 그 자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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