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한 밤이네요” 반백 년 배우가 연 영화제 첫 장

“오늘도 아름다운 밤이십니까.” 사회자 강석우의 질문에 방금 무대에 올라온 장미희(67)의 웃음이 터졌다. “네, 판타스틱한 밤이네요.” 지난 3일 경기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식은 올해 BIFAN 조직위원장을 맡은 장미희의 위원장 데뷔 무대였다. 이날 개막식은 태초의 인류가 AI 신인류로 진화하는 영상으로 열렸다. 이어 인간 본성에 맞부딪히는 기계 알고리즘의 성찰을 현대무용가 최호종이 춤으로 표현했다. 영화제 개막식에서 만나기 힘든 깊이 있는 공연에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졌다.
개막식의 과감한 시도는 장미희 위원장과 송승환(68) BIFAN 총감독의 합작품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만난 장미희는 “모든 플랫폼이 바뀌는 시대에 영화제를 왜 해야 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타 공인 완벽주의자인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도 완벽한 헤어와 메이크업으로 나타났다. 1991년 ‘사의 찬미’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소감을 남겼을 때만큼이나 우아한 모습이었다.
AI와 현대무용을 결합해 올려보자는 기획은 장미희의 아이디어였다. 이를 영화제 품격에 맞게 구현해낼 총감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배정된 예산이 없는 무보수 자리였다. 장미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던 송승환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1980년 영화 ‘색깔 있는 여자’로 인연을 맺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장미희가 낮에는 고아원 원장, 밤에는 술집 여성으로 변신하는 농염한 내용이었다. 그때만 해도 연극 활동 위주였던 송승환은 장미희가 일하는 술집에 놀러간 재벌 2세로 두 장면 등장했다. 장미희는 “늘 서로의 예술적 행로를 지켜봐온 송 감독에 대해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뢰는 용기를 불렀다. 지난 4월 장미희는 “드릴 예산은 없지만 꼭 부탁한다”며 송승환에게 연락했다. 송승환은 흔쾌히 승낙했다. 오히려 “봉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개막식처럼 큰 무대는 조명이나 음향의 1초 차이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완벽주의 장미희를 괴롭힐 수 있는 1초의 차이를 송승환은 말 없이도 알아챘다. 예술 동지 반백 년의 교감이었다. 장미희가 자칫 예민해지려 할 때마다 송승환은 “대세에 지장 없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다독였다. 혹시나 꼬인 문제는 앞장서 해결해줬다. 장미희는 “송 감독님은 그야말로 현인(賢人)”이라며 “이토록 의지해 본 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스승의날에는 배우 김희애를 포함해 셋이 함께 김수현 작가를 모시고 조촐한 점심 식사도 했다.
장미희는 지난달 대한민국 예술원 신입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반백 년 배우를 해보니,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10 중 9만 이뤄지고 나머지 1은 하늘이 내려야 가능하더라”며 “앞으로도 송 감독님과 함께라면 하늘이 내려줄 1을 기다려 볼 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장미희가 기자에게 살짝 당부했다. “저보다 송 감독님 좀 잘 써주세요.” BIFAN은 오는 1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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