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89] 불타는 창문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 7. 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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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골드스타인, 불타는 창문, 1977년/2015년 재제작, 나무와 아크릴판·조명 등, 가변크기.

어둡게 칠한 벽면 정중앙에 격자 창틀이 있다. 창틀에는 빨간색 아크릴판이 끼워져 있고, 조명이 깜빡여서, 마치 창 너머에 거센 불길이 일어난 듯하다. 물론 전시실에 불이 났을 리 없고,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숱하게 보아왔다. 붉게 물든 창은 지옥 같은 재난의 전조다.

캐나다 출신 미술가 잭 골드스타인(Jack Goldstein·1945~2003)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흔히 ‘픽처스 제너레이션’이라는 작가군과 함께 언급되곤 했다. 이들은 텔레비전, 광고, 영화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가 우리의 시각 환경을 어떻게 장악하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규정하는지 비판적으로 탐구했다. 특히 골드스타인은 단순히 대중적 이미지를 차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 이미지를 대하는 관객들의 윤리적 태도를 끝없이 질문했다.

‘불타는 창문’의 상황은 혼란스럽다. 우리는 창문 안에서 바깥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작가의 말처럼 창문이 ‘안전하지만 깨지기 쉬운 장벽’이라는 점이다. 작품은 관객과 재난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 같지만,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이곳에 들이닥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남긴다. 붉은 창 앞에서 느껴지는 차고도 고요한 공기는 오히려 불안을 증폭하는 영화적 장치다.

지금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곳곳은 역대 최악급 폭염에 휩싸여 있다. 기온이 체온보다 높고, 산불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한때 영화 속 재난의 은유였던 붉은 창은 이제 더 이상 비현실적 장치로만 남아 있을 수 없다. 이 여름, 우리는 언제까지 창 너머에 머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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