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의 그 사람의 글씨] [10] 첫 글자는 굵지만 마지막은 흐릿...불안과 갈등 드러낸 카프카

구본진 필체 연구가·변호사 2025. 7. 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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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서명.

검은 잉크가 종이를 스칠 때, 인간의 영혼은 찰나의 윤곽을 드러낸다. 프란츠 카프카의 서명은 고요한 절규요, 질서 속에 숨겨진 혼돈이며, 한 존재가 세계와 맺은 불편한 계약의 흔적이다. 이 짧은 필적 안에는 침묵과 격정, 이성과 광기,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교차한다. 마치 그의 문장들이 그러하듯, 이 서명 또한 투명할 만큼 명확하면서도, 그 안에 감춰진 어둠은 헤아릴 수 없이 깊다.

‘Franz Kafka’라는 서명은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글자 사이의 밀도와 간격에서 미묘한 불균형이 느껴진다. 이는 겉으로는 질서를 갖춘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내면과 감정의 흐름이 숨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F’는 넓고 강하게 시작되어 자의식과 지적 자존감을 드러내며, 중간 글자들은 서로 밀착되면서도 때때로 독립적인 형태를 띠어 분석적 사고와 내면의 긴장을 암시한다. 마지막 ‘z’는 날카롭고 단단하게 마무리되어, 예민하고 비판적인 감수성을 보여준다.

서명 전반에 드러나는 굵고 강한 획은 강한 필압과 에너지를 반영한다. 첫 글자 ‘K’는 치솟는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이 조화를 이루며 창의성과 긴장된 자의식을 드러낸다. 마지막 ‘a’는 느슨하고 흐릿하게 처리되어 표현에 대한 주저함과 불안을 암시한다.

기울기, 크기, 획의 굵기에서 반복되는 미세한 변화는 감정 기복과 내면의 갈등, 자기 회의를 드러낸다. 직선과 곡선의 혼재는 논리와 감성의 충돌을 상징한다.

또한 ‘f’와 ‘k’ 같은 중간 글자들이 보이는 개별적인 움직임, 그리고 흐름의 돌연한 단절이나 독립된 글자들은, 카프카가 사물과 사건을 논리적으로 연결 짓기보다는 직관의 조각들로 감지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 서명은 단절과 균열, 예측 불가능한 흐름 속에서 직관으로 자신을 구성해낸 자화상이다. 완결된 형식이 아니라 감정과 상징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이 서명은, 존재와 표현 사이에서 흔들리는 카프카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자신에게조차 믿게 하기 어려웠던 ‘표현’이라는 행위를 통해 남긴 조용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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