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살리고 떠난 아빠, 두손 꼭잡고 발견된 자매...통곡의 텍사스

미국 텍사스주 커 카운티 일대에 폭우가 몰아닥친 지난 4일 새벽, 식당 접시 닦이 일을 마치고 잠을 자던 줄리언 라이언(27)의 트레일러 주택에 빠른 속도로 물이 차기 시작했다. 라이언과 약혼자가 잠에서 깼을 때 발목까지 찼던 물은 순식간에 허리까지 올라왔다. 침대 위에는 이제 여섯 살과 13개월 된 아이들이 있었다. 바깥의 수압 때문에 침실 문이 열리지 않자 라이언은 주먹으로 창문을 깼다. 유리에 깊게 베인 팔에서 피가 흘렀다. 가족들이 탈출하는 사이 라이언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그는 약혼자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사랑해.” 라이언은 물이 빠진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텍사스주 대도시 댈러스에 살다가 부모 및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던 블레어 하버(13)·브룩 하버(11) 자매는 오두막을 덮친 물길에 휩쓸려갔고 24㎞ 떨어진 지점에서 서로를 꼭 붙잡은 채 시신으로 수습됐다.

이번 홍수로 7일 현재 최소 100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희생자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와 실종자 상당수가 여름방학 캠프에 참가하던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미국 사회가 더욱 충격과 슬픔에 빠진 모습이다.

두 시간 만에 수위가 6m 이상 상승한 과달루페강 근처 ‘캠프 미스틱’에서는 캠프에 참가 중이던 학생과 지도교사 등 27명이 숨졌다. 아이들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숙소 2층 침대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곤히 잠든 상황에서 불어난 물길에 휩쓸려갔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던 엘로이즈 펙과 라일라 보너는 2학년을 마치고 캠프에 왔다가 희생됐다. 온라인에서는 평소 절친했던 펙과 보너가 생전에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댈러스모닝뉴스 등 지역 언론은 친구와 이웃들이 두 소녀가 다녔던 학교 교정 곳곳에 색색의 리본을 묶어 추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펙과 보너가 각각 가장 좋아했던 분홍색과 보라색, 캠프 미스틱의 상징색인 녹색 리본이다.

캠프 참가자 중 석유 재벌 윌리엄 허버트 헌트의 증손녀인 제이니 헌트(9), 쌍둥이 자매 해나·리베카 로런스(8)도 목숨을 잃었다. 캠프 미스틱은 내년 설립 10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기독교 여학생 캠프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배우자 로라 부시 여사가 이곳의 지도교사 출신이다. 텍사스 출신인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지역 유력 인사들의 자손들이 대대로 거쳐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애도 성명을 내고 “소중한 아이들을 잃은 참사 소식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이 슬픔을 이겨내기를 로라와 텍사스 주민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출신 교황 레오 14세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모든 가족에게, 특히 여름 캠프에 있던 딸들을 잃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폭우 당시 캠프에는 학생 750여 명이 묵고 있었으며, 과달루페강에서 가까운 저지대 숙소에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캠프 책임자 딕 이스틀랜드도 구조 활동을 벌이던 중 홍수에 휩쓸려 사망했다. 가까스로 구조된 여자 어린이들은 공포에 질려 울먹이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캠프파이어 노래를 불렀다고 뉴욕포스트는 전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희생자의 사연이 전해졌다. 데빈 스미스(22)의 일가족 6명은 캠핑을 하다가 4일 새벽 갑자기 불어난 물살에 휩쓸렸다. 일행 중 스미스만 24㎞ 떠내려간 지점에서 나무에 매달려 극적으로 구조됐고 나머지 5명은 행방불명됐다. 타냐 버윅(62)은 자동차를 타고 직장인 월마트로 출근하던 길에 급격히 차오른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피해가 집중된 커 카운티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많은 생명을 잃었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실종된 상태에서 가족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연방재난관리청도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 다만 최소 41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텍사스 일부 지역에 여전히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인명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폭우가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기상이변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텍사스 폭우로 대도시 오스틴 서부에는 다섯 시간 동안 36㎝의 비가 쏟아졌다”며 “10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폭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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