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을 잇다]섬진강이 준 귀한 선물, 하동 재첩

정영식 2025. 7. 7. 20:4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치국 사이소" 정겨운 그 이름 하동 재첩
섬진강은 묘하다. 물은 비린 듯 맑고 흐름은 잔잔한데 빠르다. 강의 너비도 변화무쌍해 너그럽게 품어주듯 펼쳐지다 비밀을 간직한 골짜기처럼 움츠린다.

섬진강은 산과 강이, 강과 바다가 그리고 동과 서가 만나고 스미는 물길이다. 많은 이들이 이 강을 배경 삼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남긴 것도 섬진강의 이런 묘함 때문이 아닐까. 섬진강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물을 안겨주는 강이다.
 
재첩잡이가 시작되면 작은 배들과 재첩을 담는 빨간 고무통들이 너른 섬진강을 가득 메우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사진=하동군

그런 섬진강의 선물 중 하나가 재첩이다. 작다 못해 아담하고, 아담하다 못해 여리기까지 한 재첩은 하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부산에선 '재치'로, 하동에선 '갱조개'라 불린다. 경상도 사람이면 '재치국 사이소'라는 글을 봐도 음성 지원이 되는 듯한, 구수하고 정겨운 섬진강이 주는 귀한 선물이 바로 재첩이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맑고 깨끗한 모래톱에서 자란다. 보리 베고 모내기 할 때 잡은 재첩이 가장 맛있다.

산란기라 살이 가장 많이 차는 시기다. 요맘때다. 섬진강의 맑고 빠른 물살은 재첩을 탄탄하게 만든다. 그래서 맛과 향이 진하다. "하동 재첩이 가장 맛있다"는 말은 그냥 자랑이 아니다.

재첩잡이도 지금이 한창이다. 그물이 달린 틀을 배에 매달아 강바닥을 훑어 잡는 방식도 있지만 하동 사람들은 강이 허락한 시간에, 허락한 만큼만 거둬들인다.

오래 이어진 강과 사람 간의 약속이다. 어민들은 '거랭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재첩을 잡는다. 예전엔 긴 장대에 대나무로 엮은 발을 달아 강바닥을 훑어 잡았다. 지금은 금속으로 도구의 재질만 바뀌었을 뿐 강과 사람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때문에 재첩잡이는 고되다. 허리춤까지 차오른 강물에 몸을 담그고 뒷걸음치며 거랭이로 바닥을 훑는다. 물이 맑다지만 모래톱에 숨은 재첩을 눈으로 볼 수는 없는 터. 어민들은 눈이 아닌 소리로 알아챈다. '달그락'하면 돌, '좌라락'하면 재첩이다. 몸이 기억하는 기술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섬진강 재첩잡이. 어민들의 손에 들린 것이 전통방식으로 재첩을 잡는 도구인 '거랭이'다. 사진=하동군

재첩이 망에 들면 물속에서 재첩을 일고 또 인다. 수백 수천번 흔들어 깨워야 온전한 재첩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강을 거스르지도, 억누르지도 않는다. 재촉하지도 않는다. 강 건너 이웃 광양 어민들과도 강을 가르지 않고 나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강이 주는 선물을 나눌지 늘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다.

이런 가치로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은 한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유산으로 인정받았다. 2018년 국가중요어업유산에 지정된 재첩잡이 손틀어업은 지난 2023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국내 어업 분야로는 최초다.

하동은 2017년 전통 차 농업 등재에 이어 세계중요농업유산 2개를 보유한 유일한 곳이 됐다. 그저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서가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고 생태를 해치지 않으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는 삶 자체가 인정받은 것이다.

그래서 재첩국 한 그릇엔 경외감이 든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언지 알기 때문이다. 섬진강과 남해가, 역사와 전통이, 고되게 일한 어민의 땀이 담겼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국물의 색깔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고, 그 맛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다. 차마 안쓰러운 이 국물은 그 안쓰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준다.>

소설가 김훈의 재첩국 예찬이다. 정말 그렇다. 모래 속에 웅크려 자란 여리디여린 재첩, 그 재첩을 상에 올려준 어민들. '안쓰러움'은 그래서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다.

재첩국이 가장 익숙하지만 다양한 변주도 가능하다. 삶아낸 재첩을 밥에 얹어 비벼 먹거나, 부침 반죽에 넣어 부침개로도 먹어도 좋다. 재첩을 미나리, 부추, 상추, 달래, 양파 등등 갖은 채소에 하동배까지 곁들여 초고추장에 비벼낸 무침은 별미다. 재첩무침을 김에 싸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은 하동 토박이가 알려준 '꿀팁'이다.

재첩국과 재첩무침, 참게장과 갖은 밑반찬 등 하동의 맛으로 차려진 재첩 한상. 사진=하옹

재첩 한상을 받으면 그 자체로 하동을 다 먹은 셈이다. 지금은 더 편리해졌다. 연세 지긋한 독자라면 양동이에 담은 재첩국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던 풍경을 기억하겠으나 지금은 팩에 담긴 재첩국을 집에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섬진강 물길이 예전 같지 않다. 가뭄과 홍수, 수온 상승, 댐과 보에 막힌 강의 숨결이 달라지고 있다. 강바닥을 긁는 손길도 변했다. 하동군에만 338가구, 663명의 어민들이 재첩을 잡고 있지만 환갑을 넘긴 이가 다수다.

때문에 하동군은 재첩잡이 전통을 이을 젊은이를 지원하고 어민들의 부담을 덜어줄 유통과 가공, 브랜드화도 꾀하고 있다.

줄어드는 재첩을 늘리기 위해 대량의 치패를 방류하고 자원 회복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몇 해 전 큰 수해로 물길이 요동치면서 재첩이 살 수 있는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대규모 이식사업도 펼쳤다. 중국산 재첩이 우리 밥상을 어지럽히는 일도 어민과 상인이 나서 자율적으로 막고 있다. 매년 섬진강문화재첩축제를 개최해 섬진강 재첩을 알리고 보전하자는 인식을 넓히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섬진강은 흐르고 어민들은 거센 물살을 몸으로 막아내며 거랭이로 강바닥을 훑는다. 강의 숨결이 예전 같지 않고, 사람은 줄어도 강과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재첩은 섬진강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섬진강에서 물에 땀을 바다로 흘려보내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실되고 정중한 인사를 전한다.

정영식기자 jys23@gnnews.co.kr 취재도움=하동군 해양수산과

 

섬진강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한 보물, 하동 재첩. 사진=하동군
재첩국. 재첩국의 뽀얀 국물을 소설가 김훈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도 같다고 했다.
재첩과 갖은 채소를 넣어 초고추장에 비빈 재첩무침.

Copyright © 경남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