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감각, 시간의 여운…낯선 침묵 속 울림을 전하다

최명진 기자 2025. 7. 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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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일천 기획초대전, 오는 9월9일까지 드영미술관
정서의 파동·침묵의 진동 응축된 ‘순간의 감각’포착
익숙한 듯 낯선 ‘살아 있는 지각’ 찰나의 의미 담아내
‘The windows of the Future’
‘Phenomenon Space III(현상공간 3)’

무심히 지나친 공간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잊힌 기억이 다시 움직인다. 사진작가 리일천은 이처럼 의식의 틈 사이 남겨진 공간의 인상에 주목한다.

흑백 프레임에 담아낸 존재의 감각과 시간의 여운이 ‘Phenomenon Space-Chaosmos of Healing’이라는 주제로 드영미술관을 채운다. 전시는 오는 9월9일까지 미술관 1-3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주요 작업 33점이 출품된다.

전시 제목인 ‘Phenomenon Space’는 감각의 층위에서 발생하는 공간, 즉 존재가 머무르고 흔적이 감도는 장소를 의미한다. 여기에 ‘Chaosmos’는 질서와 혼돈, 구조와 흐름이 공존하는 우주적 조화의 개념을 더한다.

작가는 이 두 개념을 통해 일상의 틈 속에서 되살아나는 감각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치유의 가능성을 사진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는 그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철학적 질문을 시각 언어로 전개한 작업이다. 작가는 삶 속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공간들 중에서도 유독 깊이 각인되는 장면에 주목해왔다.

집과 길, 도시와 건축물 등 물리적 공간은 우리 삶의 궤적과 함께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지만, 모두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예기치 않게 마주친 장면이 오히려 더 깊이 뿌리내리기도 한다.

작가는 바로 그런 ‘순간의 감각’을 사진에 포착한다. 문과 계단, 벽과 바닥이 만나는 경계 같은, 인간의 흔적이 지워진 듯한 정적의 공간을 연출이나 조작 없이 담아낸다.

흑백 모노크롬 이미지로 표현된 화면은 단순하고 고요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설명할 수 없는 정서의 파동과 침묵의 진동이 응축돼 있다.

작가의 작업은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과도 맞닿아 있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단순한 시각적 관찰이 아니라, 몸 전체를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 감각의 흐름이라고 봤다. 리일천의 사진은 이러한 ‘살아 있는 지각’의 순간을 담아낸다.

사진 속 요소들은 결코 정지해 있지 않다. 문이 열리지 않아도 빛은 스며들고, 계단은 어디론가 연결돼 있다. 천장의 창에 어른거리는 구름의 움직임부터 경계면에 쌓인 시간의 결까지. 이 모든 요소는 마치 그 공간을 걷고 있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감각과 존재의 울림을 되살리며,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제안하는 치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질서와 혼돈,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공간 속 감각의 회복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시간을 펼쳐 보인다.

작가는 “사진에 나타난 시간의 흔적은 미묘한 시간과 공간의 순간성과 영원성을 보여주며, 우주와 나와의 관계를 사색하게 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의 각박한 현실에서 빚어지는 상처를 치유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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