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흑인 최초 윔블던 우승 50주년 아서 애시. 라켓과 책을 든 영웅

김종석 2025. 7. 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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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테니스의 전설로 불리는 아서 애시와 세리나 윌리엄스가 나란히 윔블던 우승을 차지한 모습과 플레이 장면을 생성형 AI 코파일럿으로 합성했다. 애시는 50년 전 흑인 최초로 남자 단식 정상에 섰다. 세리나는 윔블던 단식에서 7차례나 우승했다. 

최고의 테니스 무대 윔블던의 열기가 초여름 코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전체 일정 가운데 절반을 소화한 가운데 이변이 일어나기도 하고 남자 단식에서는 대회 3연패를 노리는 세계 2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8강에 안착했습니다.

8강 진출자가 속속 가려지고 있는 이번 윔블던은 반세기 전 흑인 최초로 남자 단식에서 정상에 오른 아서 애시(미국)에 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승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와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윔블던 현장을 방문한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최초의 흑인 테니스 선수로 윔블던에서 우승했다는 업적뿐 아니라 뛰어난 인품을 지녔다. 매너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혈액 수혈을 하다 에이즈에 걸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지만, 여전히 존경받는 인물이다. 헤드 라켓이 주목받는 계기도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1975년 윔블던에서 흑인 최초로 윔블던에서 우승한 아서 애시의 플레이 모습. 50주년을 맞아 그의 인생이 새삼 조명되고 있다.  애시 홈페이지 캡처

애시는 1975년 7월 남자 단식 결승에서 당시 세계 랭킹 1위 지미 코너스(미국)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안았습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메이저대회인 윔블던에서 처음으로 흑인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재까지 흑인 우승자는 애시뿐입니다. 

애시는 경기 후 “나는 위대한 테니스 선수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 이바지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애시의 우승은 인종 장벽을 허문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애시는 은퇴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 흑인 교육 기회 확대,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 지원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US오픈 메인 코트로 그의 유산을 기리고 있습니다. CNN은 그를 향해 “단순한 챔피언이 아닌 스포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유색인종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에게 영감을 주며 세상의 변화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테니스는 한때 귀족과 신사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애시가 태어난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한때 ‘흑인은 테니스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라는 법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고향 리치먼드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의 수도로 흑인 차별이 심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흑인과 백인은 학교, 식당, 버스, 화장실, 공원 등 모든 공공시설에서 분리돼야 했습니다. 리치먼드의 흑인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교육 기회 부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애시는 이런 편견과 불의에 맞서 싸웠습니다. 테니스코트 관리인으로 일하던 아버지 덕분에 다른 흑인에 비해 쉽게 테니스를 접했던 애시는 UCLA에 테니스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습니다. 오로지 라켓 하나로 차별과 싸움 그는 남자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미국 대표로 선발됐습니다. 


<사진> 애시의 윔블던 우승을 다룬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 애시 홈페이지 캡처

애시는 1968년 흑인 최초로 US오픈 정상에 오른 뒤 1970년에는 호주오픈에서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5년 가까이 슬럼프에 시달리던 그는 31세의 나이에 열살이나 어린 코너스를 결승에 제압하며 테니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윔블던은 엄격한 흰색 드레스 코드로도 유명합니다. 속옷까지도 흰색을 착용해야 합니다. 온통 흰색만이 용인되는 코트에서 흑인 최초로 우승했다는 사실은 스포츠를 뛰어넘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1983년 심장 수술 도중 수혈을 받다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그는 1992년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결국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1993년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이즈 감염 후에도 그는 “집에 앉아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게 낫다”라며 더욱 열성적으로 사회활동을 펼쳤습니다. 애시는 “에이즈보다 흑인이라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에이즈는 나의 몸을 죽이지만 인종차별은 나의 정신을 죽인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망에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진정한 미국인의 영웅을 잃었다”라며 애도했습니다. 


<사진> 애시의 고향인 리치먼드에 세워진 그의 동상. 한 손에는 라켓, 다른 한 손에는 책을 쥐고 있다. 애시 홈페이지 캡처

그의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1996년 7.2m 높이의 애시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언뜻 상상해 보면 라켓 하나 정도 들고 있을 것 같은데 달랐습니다. 오른손에는 책을, 왼손에는 라켓을 쥐고 있습니다. 애시가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라 교육과 인권을 중시한 지성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상 아래에는 아이들이 애시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가 다음 세대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는 존재였음을 상징합니다. 

애시가 던진 메시지는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에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진정한 영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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