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과 아리랑 그리고 헐버트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가 아리랑을 연구해 왔지만 '아리랑'이란 뜻조차 개념적으로 설정하질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어원부터 수십 가지 가설이며, 발생 시기 또한 연구자들의 잣대로 설정되어 있어 아리랑만큼 다양한 학설이 나와 있는 학문도 드물다. 문경새재아리랑도 이와 마찬가지로 전해오는 가사도 있고, 가창자도 있었지만, 개념 규정만큼은 쉽사리 밝히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리랑에 대한 가사와 악보가 외국인에 의해 채록되고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국인은 미국 출신의 선교사이자 고종의 독립운동을 보좌한 대한민국의 외국인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헐버트 박사로서 실제 이름은 호머 베자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이다.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였으며 사학자,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 조선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교육자, 독립신문 발행을 도왔으며, YMCA 초대 회장, 한국어 연구와 보급에 앞장선 한글학자였다. 그야말로 근대 시기 안팎으로 우리나라 문화 발전과 역사 발전에 견인차 구실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1886년 조선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린이들이 부르는 아리랑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10월, 아리랑에 악보를 붙여 미국에 있는 누이동생에게 보내주었고, 이후 1896년 자신이 발행한 영문 잡지인 『코리안 리포지토리(Korean Repository)』에 아리랑의 악보와 가사를 실어 세계에 소개했다. 이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이 서양의 오선보에 기록된 최초의 사례이며, 한국 음악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아리랑은 서양 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실린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라릉 아라릉 얼싸 배 띄우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이다. 여기에 분명 문경새재가 들어가 있다. 헐버트 박사는 이 부분은 후렴구라고 했다. 후렴구에는 반드시 문경새재를 불렀다. 여기에 왜 문경새재와 박달나무가 가사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노래가 채록된 「한국의 소리 음악(Korean Vocal Music)」에 헐버트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다. "아리랑은 한국인에게는 쌀과 같은 존재다. 다른 노래들은 말하자면 반찬에 불과하다. 이 노래는 어딜 가도 들을 수 있다"라며 "내가 알기로는, 이 곡은 3천5백2십일 전인 1883년부터 유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노래는 즉흥곡의 명수인 한국인들이 끝없이 바꿔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후렴구는 바꾸지 않고 부른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헐버트 박사가 미국에서 조선에 왔을 당시 노래가 유행하게 된 배경의 무언가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한양에는 대규모 국가적 사업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수도 한양에서는 궁궐 복원 공사가 있었다. 바로 경복궁 중건 사업인데 이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대규모 궁궐 재건 사업으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경복궁을 270년 만에 복원하게 된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로 약화한 왕실을 재정비하고, 경복궁을 조선의 법궁으로 재건해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 또한 조선 건국의 상징으로, 이를 복원함으로써 국가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때가 바로 헐버트 박사가 말하는 3천5백2십일 전인 경복궁 중건 시점이 된다. 1865년에 착공해 7년 만에 준공이 되었는데 이때 전국에서 온 장정들이 무려 7,000명에 달했고 건물은 7,225칸의 규모로 준공이 된다. 이렇게 전국에서 온 수많은 장정에게 밤마다 연희를 베풀어주고 노래 경연대회도 펼쳐졌다고 한다. 바로 이 부분이 근대의 아리랑을 낳게 했을 것이다. 이 노래가 한양 전역에 퍼졌을 것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장정들에 의해 노래는 삽시간에 퍼져 나갔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의 실제 기록이다.
이때 만약 헐버트 박사가 아리랑 가사를 채록하지 않고 악보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아리랑은 그저 우리 민족에게 구전으로 전해지는 하나의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경시에서는 헐버트 박사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최초의 아리랑 악보와 가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헐버트 박사의 아리랑비를 건립했다. 2013년 8월 비석을 세우면서 헐버트 박사의 증손 킴벌헐버트를 초청해 감사패도 전달하고 비석 제막식에서 축사도 하게 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96년 2월 고종의 외무특사였던 호머 베자릴 헐버트 박사에 의해 발행된 영문잡지 에 우리의 아리랑이 서양악보로 처음 기록되었다. 여기에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가네'의 가사가 있어 우리나라 아리랑 기록상 그 첫 시원을 알려주고 있다.
문경새재는 모든 아리랑의 고개 대명사로 알려져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속에 눈물과 애환, 희망과 미래가 녹여져 있는 공간이다. 이에 문경새재 고개에 깃든 아리랑의 역사와 헐버트 박사를 기억하고자 이 기념비를 세운다."엄원식 문경시 가은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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