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내년 5월말까지
64권 소장… ‘홍길동전’ 완판 방각본 등 만날 기회
AI 전기수가 읽어주는 코너·책갈피 만들기 등 체험

한국 문화의 접두사가 된 알파벳 ‘K’를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해외에서 하나의 장르로 통용되는 건 특유의 서사가 한몫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도 통하는 그 이야기의 원천은 할리우드에서 온 게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전하고 간직해 온 ‘우리 이야기’, 그 원형을 담은 ‘고전소설’을 한국근대문학관이 기획전시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로 펼쳐 놓았다.
한국근대문학관은 고소설 64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학관 소장 자료 가운데 제작 연도가 확정된 가장 오래된 고소설 ‘홍길동전’(1857년 발행 추정) 완판 방각본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방각본 소설은 민간 판매를 목적으로 출간한 목판본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 인쇄업이 발달한 전주지역에서 찍은 책은 완판본, 안성 등 수도권에서 인쇄한 책은 경판본이라 한다. 단독으로 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쓴 필사본도 많다.

‘홍길동전’을 비롯해 ‘삼국지’(주왈교본·조선 후기), ‘유충렬전’(조선 후기), ‘장풍운전’(1914), ‘기담수집’(일제강점기), ‘기문총화’(조선 후기), ‘태평광기’(조선 후기) 등 자료적·역사적 가치가 큰 고소설도 만날 수 있다. 주왈교본 ‘삼국지’는 시대를 초월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삼국지의 초창기 판본을 살필 수 있으며, 다른 책과 달리 비단으로 표지를 꾸민 ‘유충렬전’ 필사본은 상류층이 읽었던 책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책을 빌려주던 ‘세책점’이 있었다. 세책점에서 대여하는 세책본은 쉽게 손상되지 않도록 가정에서 읽는 책보다 표지를 두껍게 만들었다. 각 페이지 하단 끝부분에 두세 글자씩 빈 공간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된 세책본의 그 빈 공간에는 얼룩이 묻어있는데, 다름 아닌 ‘침 자국’이다. 침을 발라 넘겨도 글씨가 번지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공간을 남겼다고 해서 ‘침 자리’라 불렸다.
전시장 2층에는 고소설을 장르별로 구분해 전시했다. ‘상사동기’ 같은 사랑 이야기, ‘장끼전’과 ‘둑겁전’ 등 세상을 동물 이야기에 빗대는 우화소설과 풍자소설, 최고 인기 장르인 ‘유충렬전’, ‘소대성전’, ‘용문전’ 등 영웅소설을 볼 수 있다. 이들 영웅 이야기를 한데 모은 소설 합철본과 여성 영웅이 등장하는 ‘박부인전’도 눈에 띈다.
가족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랑, 질투, 복수를 다룬 고소설들은 이른바 ‘K-아침드라마’ 이야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을 대신해 옥에 갇힌 열녀 이야기 ‘곽씨열녀전’, 계모와 전처 소생 간 갈등을 그린 ‘조한림전’, 가문 간 갈등을 다룬 ‘창선감의록’ 등이다.
전시된 고소설을 펴 볼 수 없는 아쉬움은 문학관이 기획한 각종 미디어·체험 전시로 달랠 수 있다. AI(인공지능) 전기수(소설을 낭독하는 전문 이야기꾼)가 고소설을 읽어주는 코너, AI로 제작한 고소설 이야기 영상물, ‘토끼전’(출토전)이나 ‘구운몽’ 속 장면을 활용한 엽서·책갈피 만들기 등이 마련됐다.
전시는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관에서 내년 5월31일까지 열린다. 문학관은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전시 기간 운영한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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