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떼려야 뗄 수 없음을…그것이 인생이니까

서헌 창녕 영산고 교사 2025. 7. 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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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샘의 북적북적 책읽기] <모순> (양귀자 지음)

스물다섯 살 미혼 여성 안진진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도
우리는 오늘도 힘을 내 살아가

모순 가득 인생사 이해하면서
나 자신 받아들이는 여유 필요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22쪽)

우리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다. 좋아하면서도 미워하고, 서로 마음을 다 알면서도 하지 않아도 될 독설을 내뱉고, 어떻게든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생채기를 후벼 파고는, 미안해하기도 한다. 기대하면서도 불안해하고,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머뭇거려지는 마음, 변화무쌍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지쳐가면서도 자신을 다독거려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늘 마주하게 된다.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안진진은 전 생애를 걸고라도 인생을 탐구하면서 살아갈 거라고 다짐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양귀자〈모순〉표지. 

양귀자 소설의 힘을 보여주는 스테디셀러<모순>, 1998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후 170쇄를 찍으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물다섯 살 미혼여성 안진진을 통해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들로 여러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을 '영산고 아리샘 학부모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보냈다.

특정 시대에만 공감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보편적인 내면을 두드리는 이야기라서 더 공감이 되었다고,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여 좀처럼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고,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딸의 사윗감으로 김장우보다는 나영규 같은 남자를 선택하기를 바라게 된다고, 안진진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이십대를 돌아보기도 하였다고,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때로는 모순 자체를 인정하고 끌어안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고 전반적인 감상을 들려주었다.

계획적이고 안정적이지만 다소 지루하고 답답한 나영규와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가난한 사진작가 김장우,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두 남자를 놓고 저울질하는 게임이 어렵다고 느끼는 안진진은 두 남자 중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반드시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타인의 시각에서 보면 누구나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이모는 무덤 같은 평온하고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에 비해 안진진의 엄마는 젊어서는 남편의 폭력과 아들 진모의 방황으로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으로 불가사의한 활력을 재생산하며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296p)

안진진은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는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한 안진진은 삶의 어떠한 교훈도 자신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하자고 함께하는 사랑이 아닌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함께하는 사랑을 선택할 것 같았던 안진진은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모순 때문에 자신의 삶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안진진은 엄마와 이모의 삶을 탐구한 결과, 나영규를 선택한 듯 보이지만, 더는 자신의 인생을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해석하려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있다.(303쪽)

우리는 너무 행복해지고 싶어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 때가 있다. 더 큰 행복을 찾다가 작은 행복이 온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도 있다.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어차피 머리가 아니라 마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295쪽)

인생은 불행과 행복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쩌면 불행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행을 꿈꾸지 않는 이상 불행은 필연적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잘 부각되지 않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며 아주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이 특별한 것은 바로 이 평범함에 있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우지현, <나를 위로하는 그림>, 책이 있는 풍경, 2015)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김영사, 2021) 저자인 밀라논나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삶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너무 많아. 그때마다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해봐야 나만 갉아먹더라고……그러니까 그냥 초연하게 흘러가는 강물 바라다보듯이 아, 지금은 또 내 삶이 이렇게 흘러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겠다는 거지. 너무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거죠. 거기에 내가 함몰되고 싶지 않은 거야. 남이 보기에 객관적으로 불행한 상황인 거잖아. 근데 난 그거에 함몰되고 싶지 않다고, 꿋꿋하고 싶단 말이야.'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인생, 남들이 보기에 불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오늘도 힘을 내어 살아간다. 삶의 온도와 속도, 깊이가 모두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내 상황과 비슷한 인물을 보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무언가를 더 소유하려 하고, 남들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누지 않으려 하고,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과 욕망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어긋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지 않은가. 

작가는 이 소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뿐인 삶을 반성하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믿어온 작가는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야기와 새로운 현실에서 얻은 감동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순간을 살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영원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타인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평소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 숨 가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데 주어진 일들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타인을 소외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타인에게 상처주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296쪽)

책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안진진이 말했던 마지막 한 마디에 모두 공감하며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안진진이 안진진으로 살아온 그 모든 시간을 응원하며 앞으로 펼쳐갈 인생에 몇 마디를 덧붙여 본다.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주고 함께 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선물은 없다. 그 시간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쓰는 일이 가장 고귀한 일임을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사랑에는 불행한 현실도 행복한 삶으로 바꿔놓는 힘이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 추천하고 싶은 영상 

JTBC 16부작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2019년 방영, 박찬홍 연출, 김지우 극본)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4년 개봉, 팀 밀란츠 감독)

◆ 추천하고 싶은 책

최은영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2022년, 마음산책)

클레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3년, 다산책방)

/서헌 창녕 영산고 교사

☞ 필자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약한 존재이지만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장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인식하는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문학',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역사'를 꾸준한 책읽기를 통해 심어주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