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승리 선언’ 배경엔…40년 전 이라크 상대 ‘버티기 성공’ 기억

김지훈 기자 2025. 7. 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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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최근 이스라엘·미국의 12일간 공습으로 수십년간 추진해온 핵 시설이 타격을 받았다.

아프숀 오스토바르 미국 해군대학원 부교수는 "이란은 장기간의 전면전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스라엘인들이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자신들이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쟁 당시 이란은 보유한 미국산 F-14 전투기의 부품이 고갈됐지만, 미국이 부품을 보내주길 거부해 이라크에 군사적 우위를 넘겨주게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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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무슬림 신도들이 6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열린 제3대 이맘(최고 성직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순교 기념일 행사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은 최근 이스라엘·미국의 12일간 공습으로 수십년간 추진해온 핵 시설이 타격을 받았다. 군수뇌부와 핵과학자들 수십명이 살해당했고, 영공은 이스라엘에 장악당했으며, 수도 테헤란 시민들은 도시를 비우고 피난을 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취약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도 이란이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서방과 각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이란의 강경한 자세와 안보 전략에서 40년 전 이라크와 벌였던 전쟁이 이란에 미친 뿌리 깊은 영향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지 1년 후 정치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이라크가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이란 이슬람 혁명은 이슬람 세력이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이슬람 공화국을 세운 사건이다.

이후 8년간 이어진 이란과 이라크 전쟁은 양쪽에 수십만명의 희생을 낳은 20세기 최악의 국제 분쟁 중 하나로 꼽힌다. 후세인은 사린 가스 등 화학무기까지 동원해가며 이란의 유전 지대를 공격했다. 이란은 전 세계적인 고립 상태에서 치른 전쟁이었으나, 이라크에 영토를 내어주지 않았다. 이란 지도자들은 저항이 성공적이었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 2일 이란은 자신들의 핵 활동을 감시해온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 중단을 공식화했다.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란 지도자들의 이런 자세의 기반에는 이라크전에서 얻은 외세에 맞서 굴하지 않고 싸울 수 있단 자신감이 깔렸단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아프숀 오스토바르 미국 해군대학원 부교수는 “이란은 장기간의 전면전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스라엘인들이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자신들이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쟁 당시 이란은 보유한 미국산 F-14 전투기의 부품이 고갈됐지만, 미국이 부품을 보내주길 거부해 이라크에 군사적 우위를 넘겨주게 됐었다. 이런 경험을 하며 이란은 외국에 무기를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이후 자체 탄도 미사일과 무인기 개발에 착수했다. 자체 핵 프로그램 추진도 이런 영향 아래 있다.

이란-이라크전 당시 대통령이 지금의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이란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슬람 혁명은 이란에 이념을 심어주었지만, 국가 안보 체계와 사고방식은 이란-이라크전으로 형성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라크와 전쟁 경험을 토대로 만든 국가 방어 체계는 한계도 있었다. 이란이 고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만든 ‘저항의 축’은 이스라엘과 이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했다. 저항의 축에는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레바논 헤즈볼라 같은 이스라엘 주변국 민병대도 포함되어 있다. 이란의 자체 핵 프로그램을 이스라엘은 자신들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란은 특히 이라크를 견제할 목적으로 미사일과 드론은 많이 만들었지만, 자국민을 보호할 충분한 방공망을 갖추지는 못했다. 최근 12일 충돌에서 이스라엘 공군은 이란 영공을 장악한 뒤 자기 앞마당 드나들듯 하며 폭격을 퍼부었다. 알리 안사리 스코틀랜드 세인드앤드류대 교수는 “이란은 공중전이 현대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란은 이란-이라크전의 성과가 미래에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과도하게 부풀려진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짚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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