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준석 성신카메라 사진사 “카메라로 세상 담기…오래도록 지켜가고파”

변성원 기자 2025. 7. 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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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프랑스 신부님께 기술 배워
1968년 동인천역 일대 사진관 개소
반세기 세월, 인천의 희로애락 담아
▲ '성신카메라' 이준석 사진사.

"동인천역 주변은 저에게 많은 추억이 깃든 특별한 공간이에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 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제 사진관을 이곳 동인천에서 오래도록 지켜가고 싶어요."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인천 동인천역 골목 한켠에는 정취 깊은 사진관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이준석(81·사진) 사진사가 운영하는 '성신카메라'이다.

그는 1968년 처음 동인천역 일대에 사진관을 열고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순간들을 필름 속에 담아오고 있다.

배고프던 유년 시절에 이 사진사가 농기구 대신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쥔 건 어릴 적 프랑스 신부님이 건네준 따뜻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사실 제 고향은 황해도 신천군이에요. 연안파였던 선조들이 반김일성 운동을 하자 3대를 멸하라는 지령이 내려왔다고 들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충남 서천군 비인면으로 몸을 피했는데 여기서 신부님을 만나게 됐죠."

바로 앞집에 살던 프랑스 신부님에게 사진 기술을 배우며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60년대 당시 상권이 번성하던 동인천역으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사진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신부님이 전기 없이도 사진을 만드시는 걸 보고 정말 신기했어요. 기술을 전수 받고 인천에 올라와 처음에는 자유공원이나 송도 유원지에 다니며 사진 찍어주고 했어요."

인천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카메라가 보급되던 지역 중 하나였다. 인천항과 항만 주변에 있는 주한미군 매점(피엑스·PX) 창고에서 시중으로 물자가 흘러나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동인천역 일대에 '양키시장'이라 불리던 송현 자유시장이 번성하고 주변 상권도 활기를 띠며 인천의 대표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됐다.

"지금은 동인천역이 변방이 됐지만, 예전에는 역사와 교통의 중심이었어요. 하루에 필름이 200통씩 팔리며 가게도 엄청나게 번창했었죠. 60년대 사진관을 차린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다 떠나고 저만 남았네요."

이 사진사는 평생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인 사진관을 오래도록 운영하는 게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눈이 아파서 오래 작업을 못 해요. 병원에서는 5년 이야기하는데 신체가 허락하는 때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요."

/글·사진 변성원 기자 bsw90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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