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45. 시·공간을 초월한 초현실주의 한국화, 이진주

김민지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025. 7. 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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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기억의 방법'(2008), 장지에 채색, 130×163㎝. /경남도립미술관

이진주(45)는 린넨, 광목, 분채, 아교 등의 재료로 한국화 채색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아크릴 물감, 입체적인 설치를 이용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는 2000년대 이후 한국화 장르 분야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한국화의 특징은 수묵과 기존의 채색 안료와 더불어 목탄, 아크릴 물감, 오일 파스텔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평면뿐만 아니라 설치와 디지털 미디어 작업을 자유롭게 병행하고 산수화, 문인화, 풍속화 같은 전통적인 양식과 도상 및 모티프를 빌려와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 양식을 차용하고 변용한다.1) 그러나 사실 이진주의 작업은 장르로 구분되는 특징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세밀한 인체 묘사, 초현실적인 풍경과 배경으로 더욱 주목받는다. 화면에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오브제가 주로 등장하지만 화면 구성은 지상과 지하, 안과 바깥, 시간과 공간이 한 화면에 공존하여 낯설게 배치되고 인체의 표현은 극도로 정교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진주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다차원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 한국화로도 자주 거론된다. 이는 한국화 분야에서 1990년부터 2000년대 들어 등장하기 시작한 동양적 표현을 바탕으로 하며 서양의 낭만주의나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나타나는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표현들이 미술 분야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했다.2) 그의 작품 역시 이 시기에 한국화 그룹에서 많이 목격할 수 있는 데페이즈망3) 기법을 사용하며 더해서 작가만의 특이점이라 하자면 특정 부분의 정밀한 인체 묘사이다. 그는 정교하고 세밀한 인체 묘사를 통해 관람자가 조금 더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찾길 바란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눈이 가려진 여성, 팬티스타킹, 신체 일부분(주로 손의 동작 묘사), 뒷모습 등의 특징이 보인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한 '기억의 방법'은 이진주의 2008년 작품이다. 작가의 작업 특징을 모두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팬티스타킹을 신은 두 여자는 반라의 뒷모습이다. 땅은 마치 지각변동을 겪은 것처럼 휘어져 있고 땅의 끝에는 개가 절단된 손의 냄새를 맡고 있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롤리에는 다 베어 먹고 심만 남아있는 사과,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전기드릴, 신체의 일부인 손이 한 화면에 나열되어 있으며 연관 없어 보이는 대상물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 이진주는 여러 인터뷰에서 작업 소재를 두고 어린시절 겪었던 경험의 기억 조각들이기도 하며, 화면에 놓여지는 여러 오브제들은 직접적인 의미보다는 그 물건으로부터 오는 공감각적 느낌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이진주의 작품에서 땅은 지상과 지하, 그 위치와 모양에서 불안정성이 느껴지며 이는 작가의 불완전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한다. 여기에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들이 더해져 인간의 삶과 죽음, 실제적인 느낌과 비현실적인 감각, 기억과 망각의 사이를 오가는 서사가 모여 한 화폭에 담긴다. 다양한 소재와 오브제의 조합은 모두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하나하나 온 것이지만 감각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이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결과물로 완성되며 화면 내부에서만 보기에는 맥락 없이 나열한 것 같은 오브제들은 관람자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진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논리로 감상자를 설득하기보다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 시간과 감각의 부분을 부여했다. 창작자의 파편화된 기억은 망각의 영역에서 다시금 소환되고 잃어버린 기억, 인간 내면과 심리의 탐구로 이어진다. 이진주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현재 세계와 인간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기를 바란다. 아름답기도, 쓸쓸하기도, 혐오스럽기도 때로는 불편하거나 왜곡된 진실을 마주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이런 다양한 삶을 우리 모두가 겪어내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 김민지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각주
1) 조수진, '한국의 회화'로서의 1990~2000년대 한국화, 〈기초조형학연구〉17:5, 2016, pp.501-509.
2)오세권, 〈현대 한국화에서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의 초월 표현에 대한 연구 - 200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 13:2, 2012, pp.303-315.
3)초현실주의에서 쓰이는 말로,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것을 뜻함.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물건이 있는 표현을 의미한다. 그 결과 합리적인 의식을 초월한 세계가 전개된다. 〈미술대사전 용어편〉

※참고 문헌
 이문정, 연구소 리포에틱 인터뷰 '미술인-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