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의 차분한 변주, tvN 웃게 한 '서초동' 성공적 출사표 [드라마 쪼개보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대법원이 있는 서초동은 오랫동안 '엘리트의 거리', '법조 권력의 중심'으로 불려 왔다. 이곳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흔히 높은 소득과 학벌, 권위를 갖춘 전문직으로 인식됐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반복돼 왔다.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거나, 날카로운 논리로 상대를 압도하는 법정의 영웅으로 그려지는 클리셰한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로펌은 법정보다 사무실에 가깝고, 변호사의 하루는 재판장에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변론보다 수없이 오가는 이메일과 보고서 작성, 그리고 상사의 지시와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살피는 일로 가득하다.
지난 5일 첫 방송한 tvN 토일 드라마 '서초동'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그동안 법정물이 주목해 온 건 법정의 중심에 선 베테랑 변호사들의 치열한 변론이나 신입 변호사들의 극적인 성장 서사였다. 하지만 '서초동'은 화려한 이상 대신 야근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는 현실의 직장인, 이른바 어쏘 변호사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에서 '서초동'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특히 최근작인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과 정서적 결을 공유한다. 전문직의 특별함보다 그 안에 깃든 평범한 일상과 관계의 결에 주목하는 접근이 닮아 있다.
그렇게 드라마는 익숙한 법조 드라마의 틀을 벗고 일상의 눈으로 그 세계를 다시 들여다본다. 이상보다 루틴에, 정의보다 퇴근에 무게를 둔 변호사들의 직장 생활을 담백하고 현실감 있게 포착한다.

주무대는 서초동 법조타운의 형민빌딩.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는 어쏘 변호사(법무법인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변호사) 5인방의 희로애락과 성장기가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형민빌딩에는 서로 다른 성격과 규모를 지닌 네 개의 법무법인이 입주해 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어쏘들은 각자의 고민과 선택 앞에서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1~2회는 그중 9년 차 어쏘 변호사 안주형(이종석)의 일상을 밀착해 따라간다. 법무법인 경민에서 일하는 그는 파트너 승진도 가능한 실력자지만, 스스로 익숙한 자리에 머무는 선택을 한 형민빌딩의 최장수 어쏘다. 그의 태도엔 이상도 사명감도 아닌 체념에 가까운 직장인의 현실 인식이 배어 있다. 상사의 말에 "시키면 해야죠"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에서 정의로운 법조인보다 피로에 길들여진 회사원의 얼굴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1회는 상해죄 항소 사건의 변론을 통해 주형의 캐릭터를 단박에 보여준다. 팩트를 정확히 짚고 논리로 쟁점을 정리해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다. 의뢰인과 상대방이 성소수자라는 맥락조차 그에겐 전략과 리스크 관리의 일부일 뿐이다. 그의 변호 방식은 능력을 드러내는 동시에, 일과 감정을 분리한 채 살아가는 회사원 변호사로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 주형 앞에 1년 차 어쏘 변호사 강희지(문가영)가 등장하며 서사에 잔잔한 균열이 생긴다. 같은 건물의 다른 법무법인에 새로 입사한 희지는 주형과 과거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 1회 말미 어쏘 5인방의 저녁 자리에서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엔 묘한 긴장이 흐른다. 홍콩에서의 인연을 언급하는 희지와,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선을 긋는 주형의 오묘한 대립은 흥미를 돋웠다.
2회는 이 감정의 균열을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간다. 공공임대주택 관련 민사사건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입장에 선다. 주형은 의뢰인인 은행의 논리를 충실히 대변하고, 희지는 세입자의 처지를 고려해 새로운 판례까지 찾아 뒤에서 돕는다. 특히 재판 뒤 식당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설전은 법조인으로서의 태도와 선택이 남기는 파장을 두고 첨예하게 충돌한다. 그리고 두 입장 모두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며 '서초동'이 판결보다 태도와 맥락을 통해 사유의 지점을 만들어가는 법정물임을 드러낸다.
'서초동'은 법정보다 사무실과 식당에서 주요 이야기를 만든다. 이는 마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수술실보다 그 밖에서 인간사를 그려냈던 방식과 맞닿아 있다. 사건은 배경이고 진짜 이야기는 '이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있다.

이 흐름을 강화하는 인물이 바로 조창원(강유석), 배문정(류혜영), 하상기(임성재)로 구성된 어쏘 5인방이다. 회식 자리와 점심 식탁에서 쏟아지는 농담과 대화가 직장인의 리얼함을 더한다. 세 사람의 캐릭터는 뚜렷하면서 과장되지 않고, 현실 직장 생활의 축소판처럼 기능한다.
특히 2회 말미, 형민빌딩 내 로펌들이 하나로 합병되며 새로운 조직 '법무법인 형민'이 탄생한다. 한 지붕 다섯 식구였던 이들이 이제 한 지붕 한솥밥 동료로 얽히게 됐다. 같은 조직이라는 설정만으로도 관계의 결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이전보다 더 내밀한 이해관계 속에서 더 다층적인 사건과 서사가 펼쳐질 것을 예고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이종석과 문가영의 연기도 중요한 재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익숙한 로맨스 구도를 기대하게 만들면서도, 판타지 같던 설렘의 얼굴에서 한 걸음 물러나 현실의 피로를 품은 현대인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구축한다. 익숙한 배경 안에서 낯선 결을 만들어내는 두 배우의 호흡은 '서초동'의 재미를 더 단단히 붙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시청률도 청신호를 켰다. 1회 4.6%, 2회 5.1%로 출발부터 전작 '미지의 서울'(3.6%, 5.0%)의 첫 주 성적을 넘어섰고, 올해 tvN 토일 드라마 중 첫 주 최고 시청률을 세웠다. 첫 주부터 안정적으로 출발한 '서초동'은 현실감과 개성 있는 캐릭터로 조용히 힘을 드러냈다. 앞으로 회차에서도 첫 주의 힘을 꾸준히 이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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