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4번 바껴도 여전한 공포감"
정부 지급 수급비로 생계 유지 중

기동타격대 2조로 활동한 박영수(63)씨는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1980년 당시 18세였던 박씨에게 입혀진 죄명은 내란부화수행죄. 계엄군에게 체포된 박씨는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158일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모진 고문을 받았다. 수사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구타는 자동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천을 얼굴에 덮어 주전자로 물을 붓는 물고문도 일상이었다. 물고문을 받다가 기절하면 깨우기 위한 구타가 곧바로 이어졌다고 박씨는 회상했다.
박씨는 석방된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당장 몇 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형의 수입에 의존하며 생활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성치 않아 무슨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문 때문에 몸이 아프다고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석방될 때 찾아온 수사관들이 계속 감시하고 있을 거라며 상무대 영창에서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협박해서다. 형에게도 부담을 주기 싫어 병원을 가고 싶어도 말하지 않고 참았다.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는 무슨 일이든 찾아 나섰다. 형에게 짐이 되는 것이 가장 미안했다. 고문으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었지만 건설현장에 일용직으로 다니는 등 힘들게 몸 쓰는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씨는 정부와 광주시에서 지급하는 수급비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박씨는 결혼도 하지 않고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결혼하자는 여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박씨는 배우자 될 사람에게 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미래의 자식들에게도 몸과 마음 어느 곳 하나 병 들지 않은 곳 없는 자신이 결국에는 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박씨는 매일 잠들기 전마다 우울증을 약 포함해서 5~6가지 약을 먹는다. 트라우마 치료도 꾸준히 받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한동안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씨는 45년전 총을 든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고 한다. 박씨는 "누가 시켜서 총을 든 게 아니었다"며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기억을 안고 45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총을 들 것이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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