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똥에 수리비 수십만 원…'먹이 주기 금지' 조례 전국 확산
배설물로 에어컨 고장, 시민 안전 위협
서울·대구·광주 등 먹이 주기 금지 확산
"선의가 독 되기도… 공존 위해 제한 필요"

"갑자기 에어컨 작동이 안 돼 AS기사를 불렀더니, 비둘기 똥 때문에 실외기가 고장 났다고 하더라고요. 수리비만 40만 원 넘게 나왔습니다."
울산에 사는 50대 A씨는 얼마 전 예상치 못한 지출을 부담해야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제집마냥 둥지까지 튼 비둘기는 실외기 주변에 끊임없이 배설을 했고, 강한 산성을 띤 분변은 냉매가 순환하는 응축기 등 부품을 부식시켰다. A씨는 "수리 후 뒤늦게 버드스파이크(새들이 앉지 못하게 뾰족한 침이 부착돼 있는 장치)를 설치했지만 이젠 윗집에서 비둘기 똥이 떨어지고 있다"며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야생에 머물던 비둘기가 도심으로 터를 옮기면서 관련 민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개체수 조절을 위해 '먹이 주기 금지' 조례를 제정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잇따르는 추세다.
6일 환경부에 따르면 비둘기는 2009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정확히는 도심에 주로 서식하는 '집비둘기'가 그 대상이다. 비둘기는 야생에서 보통 연 2회 번식하지만 도심의 집비둘기는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해 연 4~6회 번식한다.
환경부가 민원이 잦은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집비둘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 개체수는 2021년 2만7,589마리에서 지난해 3만4,164마리로 3년간 23.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둘기 관련 민원도 2,395건에서 3,037건으로 26.8% 늘었다.
집계가 일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의존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개체수나 민원은 훨씬 많을 수 있다. 대한조류협회 등 민간단체는 전국 집비둘기를 최대 100만 마리로 추정한다. 야생동물을 담당하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도심에서 암컷 1,000마리가 한 번에 두 마리씩, 연 2회만 번식해도 5년이면 2만 마리가 늘어난다"며 "해마다 태어난 새끼들도 성장해 번식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생존율을 절반으로 쳐도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체수 증가로 인한 피해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아파트 창문, 태양광 장비, 자동차 등은 배설물과 깃털로 뒤덮이기 일쑤고, 어린이집 인근 도로나 놀이터까지 오염돼 아이들의 야외 활동에 지장을 준다. 석탑, 기와, 단청 등 문화재는 비둘기 분변에 포함된 산성 물질로 부식돼 미관은 물론 보존 상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 국보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유리로 둘러싸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협도 크다. 2021년 서울지하철 4호선 노원역에서는 비둘기를 쫓는 과정에서 청소 도구가 전차선에 닿아 단전 사고로 이어졌고, 2022년 신도림역에서는 날아드는 비둘기를 피하려던 시민이 개찰구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부상을 입었다. 또 비둘기의 깃털과 몸에는 진드기 벼룩 빈대 등 다양한 기생충이 서식하고, 곰팡이와 식중독균 등이 검출된 배설물은 전염병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피해가 커지자 지자체들도 단순히 비둘기를 내쫓는 수준을 넘어 개체수 자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환점은 올해 시행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이른바 먹이 주기 금지법이다. 각 지자체는 이 법을 근거로 조례를 통해 유해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유해야생동물 먹이 주기 금지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대구 달서구와 광주 남구 등은 지난달 조례를 마련해 과태료 부과 기준 등을 구체화했다. 부산 울산 인천 등에서도 같은 내용의 조례를 준비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계도기간 이후 비둘기 등 유해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다 적발되면 1회 2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며 "먹던 과자 부스러기 등 사소한 부주의까지 과태료를 매기지는 않지만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시민들도 먹이 제공 행위를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건강한 생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선의가 오히려 해가 되지 않도록 '공존의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조류생태학 박사인 김성수 전 울산철새홍보관 관장은 "먹이가 풍부한 환경이 당장 야생동물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도심처럼 밀집된 생활공간에서는 오히려 충돌과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며 "생태계의 균형과 시민의 안전을 함께 고려할 때 인위적인 먹이 제공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존의 방식"이라고 조언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서울=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대구=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광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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