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집착의 손을 놓을 시간

왕태석 2025. 7. 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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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을 걷던 지난주 여름날의 무더운 공기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려 숲길로 들어섰다.

그 길목에서 금빛으로 눈부신 나무 하나를 만났다.

햇살을 받은 꽃들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찰나의 빛나는 풍경은 마치 자연이 선사한 작은 축제 같았다.

땅으로 내려가야 할 운명을 잠시라도 미루려는 듯한 그 모습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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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길목에서 금빛으로 눈부신 모감주나무를 만났다. 나무 밑으로 떨어진 모감주나무꽃이 땅에 닿지 않고 풀잎 끝에 매달려 떨어지는 것을 거부한 채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한 인간의 심정과도 닮아 있었다. 왕태석 선임기자

서울숲을 걷던 지난주 여름날의 무더운 공기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려 숲길로 들어섰다. 그 길목에서 금빛으로 눈부신 나무 하나를 만났다. 모감주나무였다. 6월이면 황금빛 꽃을 피우는 이 나무는 꽃잎이 떨어질 때면 마치 금비가 내리는 듯해 ‘황금비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햇살을 받은 꽃들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찰나의 빛나는 풍경은 마치 자연이 선사한 작은 축제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발밑을 보고 문득 멈춰 섰다. 떨어진 꽃잎 일부가 땅에 닿지 않고 풀잎 끝에 매달려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것도 있었고, 어떤 건 꽃술의 솜털이 풀잎에 붙잡혀 있었다. 땅으로 내려가야 할 운명을 잠시라도 미루려는 듯한 그 모습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나무 밑으로 떨어진 모감주나무꽃이 땅에 닿지 않고 풀잎 끝에 매달려 떨어지는 것을 거부한 채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한 인간의 심정과도 닮아 있었다.

처음엔 애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집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떨어지는 것을 거부한 채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한 인간의 심정과도 닮아 있었다. 자연의 섭리는 떨어짐 끝에 새로운 생명을 예비한다. 땅에 닿아야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있어야 또 다른 꽃이 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며 버티는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프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떠오른다. 이미 지나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정치인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과거에 머무는 이들.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기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발버둥은 민망함을 넘어 혼란을 불러온다. 마땅히 퇴장해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내려올 줄 모르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집착의 끝이 얼마나 추한지를 본다.

나무 밑으로 떨어진 모감주나무꽃이 땅에 닿지 않고 풀잎 끝에 매달려 떨어지는 것을 거부한 채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한 인간의 심정과도 닮아 있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다르지 않다. 끝난 관계, 지나간 기회, 이미 소진된 꿈을 놓지 못한 채 붙잡고 있는 모습은 결국 새로운 시작을 가로막는다. 아름다웠던 시절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집착은 결국 흐름을 멈추게 한다.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하면, 다시 피어날 수 없다. 자연은 늘 묵묵히 그 이치를 보여준다. 꽃은 피고 지며, 잎은 떨어져야 열매가 열린다.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 흘려보내는 것, 제때 떠나는 것. 그것이 자연의 방식이고, 인간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지금, 혹시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다음 계절을 여는 열쇠다.

모감주나무는 6월이면 황금빛 꽃을 피우는데 이 나무는 꽃잎이 떨어질 때면 마치 금비가 내리는 듯해 ‘황금비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모감주나무는 6월이면 황금빛 꽃을 피우는데 이 나무는 꽃잎이 떨어질 때면 마치 금비가 내리는 듯해 ‘황금비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모감주나무는 6월이면 황금빛 꽃을 피우는데 이 나무는 꽃잎이 떨어질 때면 마치 금비가 내리는 듯해 ‘황금비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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