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외교 실종의 시대

최진주 2025. 7.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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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1기는 '순한 맛'이었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트위터로 절제 없는 말을 쏟아내 국제사회를 당황케 했지만, 대통령 개인보다는 미국에 충성하는 관료와 군이 그의 폭주를 막으면서 적어도 미국식 질서의 틀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쌀과 자동차를 더 사지 않는다"며 "30% 넘는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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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외교보다 '힘' 우선
이란 폭격, 동맹국에 경제적 강압
전후 80년, 약육강식 시대 돌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자신의 국정 과제를 담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서명한 뒤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1기는 '순한 맛'이었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트위터로 절제 없는 말을 쏟아내 국제사회를 당황케 했지만, 대통령 개인보다는 미국에 충성하는 관료와 군이 그의 폭주를 막으면서 적어도 미국식 질서의 틀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행정부와 공화당이 모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장악된 2기는 다르다. '외교'는 실종되고 무력과 겁박 등 '힘'만 남았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란이 곧 핵무기를 완성할 것'이라는, 미국 정보기관과 다른 자체 첩보를 근거로 한 선제공격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시도를 침공 명분으로 삼은 러시아와 별 차이가 없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라면 최소한 자제를 촉구했을 텐데,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벙커버스터를 동원해 이란을 폭격했다. 이란이 미국에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만약 시진핑이 '대만 독립 세력의 준동'을 빌미로 대만해협을 건넌다면 미국은 무슨 논리로 이를 비난할 수 있나.

한때 중국의 경제적 위압이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 중단, 2017년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내려진 '한한령'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어떤가. 자기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준 적 없는 동맹국을 경제적으로 협박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취임 후 2차례 회담했고 일본 관세 협상 담당 각료는 미국 카운터파트와 7차례나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쌀과 자동차를 더 사지 않는다"며 "30% 넘는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일본이 버릇없다"는 말까지 했다. 70년 동맹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운 거였나.

안보도 마찬가지다. 나토 국가들엔 나토 탈퇴를 매개로 겁박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5%까지 올리겠다는 선언을 이끌어 내더니, 한국과 일본에까지 "나토에 준하는 국방비"를 요구한다. 지켜준다던 약속의 신뢰는 저버리고 그저 돈만 더 내놓으라고 한다.

미국의 동맹 관리는 원래 정교한 거래였다. 미국이 핵우산과 안보 보장을 제공하는 대신 동맹국들은 핵무장을 포기했다. 1960년대 서독의 핵무장 시도를 미국이 막을 수 있었던 것도,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출범한 것도 이런 '보호-억제' 교환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먼저 이 거래를 파기하고 있다. 동맹국에 '너희 방어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핵무장만은 절대 안 된다고 강요할 수 있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약소국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처럼 주먹을 휘두를 수 없다면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라도 가져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지금 핵무기를 갖지 않은 나라들이 이란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보며 무엇을 생각할까.

트럼프를 재선시킨 미국인들을 보면 앞으로도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표를 던진 이들이 갑자기 국제주의자로 돌변할 리 없다.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다. 광복 80주년,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지면서 세계는 다시 약육강식의 시대에 들어섰다.

한탄할 시간이 없다. 국가 생존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최진주 국제부장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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