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반가운 재기수사명령 [삶과 문화]

2025. 7. 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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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회의 중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조력 중인 사건의 성폭력 피해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항고 인용이래요!" 불기소 처분 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여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심각했던 사건, 그래서 특히 마음이 많이 쓰였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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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사무실 회의 중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조력 중인 사건의 성폭력 피해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항고 인용이래요!" 불기소 처분 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여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심각했던 사건, 그래서 특히 마음이 많이 쓰였던 사건이었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통계상 검찰항고 인용률은 5~10%에 불과할 정도로 항고가 인용되어 재기수사명령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왜 가해자 말이 틀리고 모순인지, 왜 피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비롯하여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해 공들여 서면을 쓰고, 항고 담당 검사에게도 연락하여 부실했던 수사의 문제점과 더불어 피해자의 억울함과 절박함을 열심히 호소한 보람이 있었다. 피해자의 진심을 검사가 봐준 것 같아 기쁘면서 뭉클했다.

나는 전화를 끊은 뒤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거봐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설득하면 되잖아…역시 포기하면 안 돼." 정말이다. 흔하진 않지만 이런 행운이 일어난다.

얼마 전 있었던 다른 일도 떠올랐다. 역시 중한 성폭력 사건이었는데,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 경찰관을 설득하기 위해 정말 영혼을 담아 서면을 썼다. 이 경찰관의 인식이 결국 우리 사회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 경찰관을 설득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불송치결정을 했고, 나와 피해자는 좌절했다.

우리는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이의신청서를 접수하기도 전에 검찰이 직권으로 경찰에 재수사요청을 했다.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다. 검사에게 물어보니 검사는 내가 서면에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항들을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수사요청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재수사가 진행된 후 이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었고, 검찰 단계에서도 나와 피해자는 가해자의 모든 변명을 격파하고 수사관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가해자는 기소되었다. 기소 소식을 듣고 나는 피해자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공익 활동을 하다 보면 세상의 벽에 부딪칠 때가 많다. 정말 문제이고,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사안인데, 관계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아니 어쩌면 많은 경우) 관계자들뿐 아니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가끔은 포기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이렇게 약자인 당사자의 진심을 봐주는 사람이 그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0명만 아니면 된다. 단 한 명이더라도, 그 한 명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김소리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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