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 도자기] (1) ‘도자기 도시’ 김해

어태희 2025. 7. 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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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가야토기서 시작된 도자문화… 70%가 분청사기 제작

경남에서 열리는 도자기 축제인 ‘김해분청도자축제’가 올해로 30회를 맞이한다. 도자축제는 영남권에서 유일한 ‘도자기 도시’인 김해의 도자문화 정체성을 드러내고 지역 도예인의 활로를 모색하는 장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축제를 찾던 방문객이 점점 줄어들고, 축제로 유입되는 젊은 도예가도 사라지며 경남 유일의 도자기 도시는 위기를 겪고 있다. 도자기 도시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해의 도자 뿌리와 현재를 짚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기 도시인 중국 징더전(景德鎭)을 통해 경남의 도자기 도시를 살릴 방안을 찾아본다.

‘도자기 도시’에는 역사와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 과거부터 도자 문화를 발전시켜 왔던 도요지의 역사, 과거부터 현재까지 도자 문화를 이어오는 도예가들의 여부가 도자기 도시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경남에도 도자기 도시가 있다. 가야시대의 가야토기부터 시작해 전 지역에서 도자기를 굽는 토기 가마가 발견된 김해다. 현재 활동하는 도예가는 120여명으로, 김해는 한강 이남으로 가장 많은 도예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토기·도자기 가마터 발굴지

송현리 유적·생림면 등서 발견
1960년대 후반 진례면 중심으로
옹기 점촌 형성… 구룡요도 존재
가락요 등 생기며 도자생산 부흥

‘분청사기 고장’ 자리매김

30년째 진례면서 도자기축제
전국 유일 분청도자박물관도
최근 상동면서 가마·유물 등 출토
분청사기 역사적 당위성 재정립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 분청과 백자 등 사기 조각. /어태희 기자/

◇김해에 뿌리내린 도자문화= 김해 도자기의 역사는 가야토기가 만들어진 2000년 전부터 이어진다. 당시 가야인들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알리는 가야토기는 금관가야를 상징하는 주요한 유물로 꼽히기도 한다. 이후로도 김해 지역에서는 흙과 물을 이용해 그릇을 만드는 활동이 이어졌다. 진례면 송현리 유적지와 진례면 시례리 유적 등에서 각 4~6세기의 토기 가마터가 발견됐고, 이후 생림면과 한림면, 상동면, 대동면 등 김해 곳곳에서 14~16세기 백자, 청자,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굴되기도 했다.

과거의 도자 생산은 한반도 전역에서 이뤄졌지만,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가는 곳은 김해를 포함해 이천과 여주, 전남 강진이 대표적이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현대 요업(窯業)은 주로 경기권에 머무르며 이외 지역에서 도자 생산은 대폭 축소됐다.

김해에서는 진례면 지역을 중심으로 1960년대 후반 옹기를 만드는 점촌(點村)이 형성돼 있었고, 진례면 고모리에는 가마 봉우리가 아홉 봉이라는 구룡요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일본인 청수(淸水)가 1974년에 장유읍에 가락요를, 1975년에 재일교포 김춘식이 진례면 다곡리에 김해요(金海窯)를 만들면서 김해의 도자 생산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도자를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하던 이들 요장은 오래 운영되지 못했으나, 당시 요장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각자 도자기 공방을 설립하고, 1980년대에 들면서 전국 각지의 도예가들이 진례면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김해에 도자기 공방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진례면에서 김해도예를 운영하는 도예가인 박용수 김해도예협회 자문위원은 “도예가들이 모여 1989년 경남전승도예협회(현 김해도예협회)를 만들고, 도자문화예술과 도자기생산 확장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가기 시작했다”며 “김해는 과거 도자문화의 역사를 갖고, 현재까지도 도자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도자 도시”라고 강조했다.

김해분청도자기박물관에 전시된 분청도자./김해분청도자박물관/

◇분청사기의 고장= 김해는 분청사기(분청도자)의 고장으로 불린다. 지역 도예가의 70%가 분청사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매해 열리는 도자축제는 ‘분청도자’의 명칭을 표방한다. 김해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분청도자박물관이 있다. 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청자 태토에 백토로 분장해 구운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도자기 기술이다.

김해와 분청사기 이야기는 ‘세종실록지리지’에 표기된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에 있는 자기소(磁器所)가 김해 감물야촌(甘勿也村)’ 등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김해 곳곳에서 ‘김해金海’라는 명문이 새겨진 분청사기와 파편이 다량 출토됐지만, 전국에서도 비슷한 발굴이 이뤄졌기에 김해와 분청사기를 잇는 연결 고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나 지난 6월 9일, 김해시가 경남 기념물인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조선 전기(1390~1480년) 가마와 폐기장, 분청사기 유물 500여점 등 발굴 성과를 발표하면서 김해 분청사기의 역사적 당위성을 재정립하게 됐다.

2024년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한 김재홍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처럼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운영된 가마가 없었다”며 “14세기 말 15세기 후반 당시에 분청사기 유업 상황을 밝힐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가마였기에 경남의 분청사기 또는 전국의 분청사기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유적, 분청사기의 교과서와 같은 유적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분청도자축제 모습. /김해도예협회/

◇도예가가 사라지면 도자기 도시도 사라진다= 도자기 도시의 정체성은 매해 열리는 ‘도자기축제’에서 발현된다. 경남의 유일한 도자기축제인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도자 소공인 집적지인 진례면에서 열리고 있다. 축제는 1996년 김해도예협회가 ‘제1회 김해도자기축제’로 첫선을 보인 이후, 2003년 8회차부터 ‘분청’을 넣은 ‘김해분청도자기축제’로 재탄생했다. 지역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 홍보하고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도자 체험을 제공하며 전통적인 도예 문화를 잇게 만드는 장이다.

지난 분청도자축제 모습./김해도예협회/

한때 50만명이 축제장에 몰리면서 김해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점차 방문객이 줄어들고 판매 수익도 감소했다. 특히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2년간 축제가 취소되며 흐름이 끊긴 이후로 하락세가 컸다. 배창진 김해도예협회 이사장은 “코로나 이후 온라인 홍보와 마켓이 활발해지면서 연배 있는 도예가들이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이유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도자기 도시’의 이름마저 흐릿해진다. 도자기축제는 ‘축제’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도자기축제는 지역 도예가들의 먹거리를 책임질 장터이자, 한 해 성과를 선보이고 차세대 도자문화를 이끌 실험대이기도 했다. 축제가 활성화된 이전에는 젊은 도예가들이 유입돼 김해에서 공방을 꾸렸지만, 도자기의 색이 흐려지고 있는 지금, 김해로 발길을 돌리는 젊은 도예가가 없다. 오히려 도자기로 생계를 책임질 수 없어 업을 그만두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도예가가 사라지면 ‘도자기 도시’의 근본도 사라지는 셈이다.

배 이사장은 “도예가들 스스로 온라인 마켓에 적응하고 활로를 늘리며 트렌드를 알아가는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그러나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과거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어떤 도움이든 절실하다”고 말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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