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평화 실천하는 인재… ‘21세기 조선통신사’ 일본 되밟다
역대 최대 규모 문화교류 행사 3차에 걸쳐 진행
조선 교류 흔적 탐방… ‘덕혜옹주결혼봉축비’도
카츠미 해변 쓰레기 40%는 한국서 흘러와 청소
학과별 특성 살려 태권도·K-팝 등 문화 공연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양국의 역사 기록만 보더라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교류의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외교적 격식을 갖춘 국가 간 교류가 이뤄졌다. 조선 태종 때부터 일본은 막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를 조선에 알렸고, 조선에서는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새로운 막부에 화평 관계의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외교행낭을 전달했다. 역사서에는 여러 이름으로 기록돼 있지만 보편적으로 ‘조선통신사’로 불리는 외교 사절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처음 외교 일정을 보내는 곳이 대마도(쓰시마)로,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외교 루트의 출발점인 셈이다.
신한대학교는 올해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과거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한일 양국의 평화 공존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문화교류 행사를 기획했다. 이번 행사가 더욱 의미를 띠는 건 미래 사회를 이끌 다음 세대인 ‘MZ세대’가 주축이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양국의 관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에서 문화교류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대학 측은 설명한다.
■ 새로운 길을 여는 시작
신한대는 대마도 2박 3일 역사 비전 기행 ‘웨이 메이커스(WAY MAKERS) : 미래를 여는 다음세대의 발걸음’이란 역대 최대 규모의 한일 문화교류 행사를 마련했다.
행사는 3차에 걸쳐 진행됐고, 디자인예술대, 태권도체육대(1차 6월24~26일), 간호대, 경영대, 사회과학대(2차 6월30일~7월2일), 공과대, 보건대(3차 7월2~5일)로 나눠 모두 1천여 명의 신입생이 참여했다. 기자는 이들의 첫 번째 여정에 동행했다.
지난 6월24일 새벽 신한대를 출발한 통학버스가 오전 7시40분께 부산항에 도착했다. 320여 명의 학생과 교수, 교직원들이 차례로 내려 출국수속을 마친 뒤 일본 대마도로 향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오전 9시10분 항구를 출발한 배는 2시간 남짓 항해 끝에 대마도 남동부의 고즈넉한 이즈하라 항구에 당도했다. 소요 시간만 보면 외국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 부산과 대마도는 지척이라 당일치기 여행객도 많다.
항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숙소에 도착,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뒤 곧바로 일정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빡빡한 일정에도 누구 하나 지친 기색 없이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일본 방문이 처음이라는 한 학생은 “2박 3일 짧은 기간에 대마도를 돌아보고 우리가 준비한 공연을 이곳 주민들에게 보여 주려면 시간이 모자란다”며 “내일 보여줄 공연에 벌써 설렌다”고 말했다.
신한대는 문화교류 행사로 각 학과의 특성을 살린 공연을 마련했다. 1차 방문에서는 학생들이 준비한 태권도 시범과 K-POP, 패션쇼 공연이 예정됐다.
외교 임무를 띤 조선통신사가 밟았던 일본 땅에서 수세기 뒤 후손들이 ‘한류 문화’를 이끌고 민간외교 사절단으로 다시 찾은 역사적 순간을 맞았다.
■ 조선통신사의 발자취
첫날 학생들은 대마도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의 흔적들을 탐방했다. 부산항을 출발한 배들이 드나드는 이즈하라항은 예전 조선통신사를 실은 배들이 머물던 항구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매년 8월 조선통신사를 기리는 ‘아리랑’ 축제가 열리고 있다. 또 곳곳에는 조선통신사의 활동과 함께 근대 조선과의 교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 잘 보전돼 있다.
역사탐방의 첫 코스로 방문한 곳은 ‘덕혜옹주결혼봉축비’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알려진 덕혜옹주가 1931년 대마도 변주의 후손인 타케유키 백작과 결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당시 대마도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의 결혼은 정략적인 결혼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비석에는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어 학생들은 발걸음을 옮겨 ‘조선통신사접우노지비’와 ‘조선통신사역사관’ 등을 차례로 들렀다. 조선통신사접우노지비는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온 ‘통신사 접반사’가 대마도에 머물던 곳에 세워진 비석이다.
조선통신사의 활동과 역사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는 당시 조선통신사의 의관에서부터 행렬도 등 다양한 사료들이 꼼꼼히 전시돼 있었다. 학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듯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전시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 미래를 향한 발걸음
둘째날에는 학생들이 주도하는 두 개의 중요한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양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과 문화예술 공연이 이른 아침부터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대마도에서 가장 유명한 카츠미 해변에 집결한 학생들은 해류를 타고 떠밀려온 온갖 쓰레기를 3시간 동안 치웠다. 이곳 주민들은 해변 쓰레기의 40% 정도는 한국에서 흘러온 쓰레기라고 했다. 실제로 쓰레기 중에는 낯익은 한글 상표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이 이렇게 단체로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은 생소하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점심 시간이 끝나자 공연장이 갖춰진 쓰시마공민관에는 주민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준비한 태권도 시범과 K-POP, 패션쇼 등 문화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입장객 중에는 어린 초·중·고 학생이 상당수를 차지했고 대부분이 태권도와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객석은 순식간에 들어찼고, 무대 위에서는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태권도 시범이 펼쳐졌다. 멋진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화려한 발차기 동작과 격파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본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까지 보냈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공민관에는 그 열기가 남았다.
대마도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대마도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봤다. 미우다 해변, 도노자키, 만제키바시 등 대마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를 들렀다. 한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한국전망대에서는 멀리 수평선 위로 부산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쾌청할 때는 육안으로 부산시내는 물론 경남 거제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신한대의 역사비전기행 1차 일정은 막을 내렸다. 부산으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마도에서의 추억을 곱씹었다.
첫 기행에 동반해 학생들과 모든 일정을 함께한 강성종 총장은 “이번 대마도 기행은 신한대의 실천적 평화교육 철학을 담은 글로벌프로젝트”라며 “학생들이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그를 통해 미래 평화를 스스로 설계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마도/최재훈 기자 c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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