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퇴짜에 114만 명 서명 동참…유례없던 ‘과학 시민혁명’
- 2005년 동남권 국립과학관 계획
- 중복사업 이유로 정부 예타 제외
- 본지, 집중 보도·서명 운동 주도
- 조선 등 전략산업 콘셉트도 관철
- 2015년 개관 과학교육기반 구축
2004년 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과학관은 모두 56곳으로 66.4%(전시면적 기준)는 수도권과 대전에 집중돼 있었다. 영·호남에 국립종합과학관은 전무했다. 인구 360여만 명의 대도시이자 동남권의 중추인 부산에는 과학관이 5곳에 불과했다. 1997년 부산 기장군 국립수산과학원 안에 문을 연 수산과학관과 부산과학교육원 내 과학관, 부산어린이회관,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그리고 부산진구 연지동 LG청소년과학관이 전부였다.

▮과학문화도시 선포…인프라 구축 시동
동남권에 국립과학관을 설립하겠다는 열망은 ‘과학문화도시-부산’을 위한 추진계획 수립으로 이어졌다. 부산시는 2005년 3월 7일 시청 국제회의장에서 ‘과학문화도시-부산’ 선포식을 열고 ‘과학문화도시, 부산’을 만들기 위한 세부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동남권 국립과학관’ 건립을 추진함으로써 과학문화 기반 구축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는 2005년 8월 과학기술부에 ‘동남권 국립과학관 건립계획’을 제출했으나, 2006년 ‘제1차 과학관 육성 기본계획’에서 대구와 광주가 국립과학관 건립지로 선정됐다. 부산은 사업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당시 기획예산처(기획재정부)는 “부산시는 2000년부터 추진, 종합계획을 수립해 왔고, 그 타당성은 인정한다”면서도, ‘1개 시·도 2개 국책사업’ 논리를 들어 당시 부산시에 건립될 예정이던 국립해양박물관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부산의 국립과학관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제신문 산하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2006년 4월 15일 제39회 과학의 날 기념식날 열린 정기총회에서 정부출연연구원 4개 기관(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공동으로 유치운동 결의를 다지는 한편, 과학계의 동조를 이끌어냈다. 같은 해 5월 2일 시 시교육청 부산상공회의소 국제신문 부산과학기술협의회 등 5개 기관은 ‘동남권 국립과학관 유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국제신문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국립부산과학관 건립 당위성을 집중 보도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정부를 압박했다. 또 ‘우리 아이들에게 과학관을 만들어 줍시다’를 주제로 100만 명 서명운동을 펼친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목표치를 달성했다. 최종 부산시민 3분의 1에 해당하는 114만6322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2005년부터 부산과학기술협의회 특별회원으로 활동하며 과학문화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김희정(국민의힘, 연제구) 국회의원은 “부산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 시민 의지를 한데 모으는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회상했다.
시민 염원에 힘입어 2010년 6월 국립부산과학관 건립이 확정됐다.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한 해당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종합적인 평가 결과 사업 시행이 가능할 정도로 우수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비용 대비 편익 분석(BC) 결과가 1.20이었다. 이는 당시 이미 건립이 추진 중이던 국립대구과학관(0.6)과 국립광주과학관(0.57)과 비교해 현저히 높았다.
정부와 시는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 내 11만550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7층(전체 면적 2만2684㎡) 규모의 국립부산과학관 건립에 나섰다. 건립 과정에는 지역 설명회는 물론 부산과학기술협의회와 시 간담회, 전시자문위원회 등이 잇따라 열리는 등 광범위하게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부산의 특성을 반영하는 과학관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건축물은 ‘과학의 바다를 향한 새로운 항해’라는 개념으로 출항하는 배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지역 전략산업을 전시 주제로
처음에는 부산·울산·경남의 전략산업인 조선 자동차 항공·우주 에너지 생명분야 등을 주제로 전시관을 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2013년 4월 26일 제2차 전시설계자문회의에서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관추진단이 ‘기초과학 원리’ ‘응용기술’ ‘미래 융·복합’으로 바꾸자는 안을 내놓으며 새 국면을 맞았다. 이는 ‘과학산업관’이라는 기존 주제와는 상관 없이 물질과 운동, 지구순환과 수송의 세계, 동력추진과 저항 등 국내외 과학관에 이미 있는 전시물과 중복됐다.
당시 지역 핵심산업을 중심으로 한 ‘과학산업관’이라는 콘셉트는 수년간 외국과학관을 벤치마킹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 2006년 과학관 유치 서명운동 때부터 유지해온 것이었다. 시와 지역 정치권,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과학관 전시 주제를 원안대로 동남권 주력산업 중심으로 변경할 것’을 건의한 끝에 2013년 8월 1일 내부 설계운영 방안에 부산의 요구사항이 대폭 수용됐다.
이후 2015년 7월 6일 이영활(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부산외국어대 석좌교수가 국립부산과학관의 초대관장 겸 이사장에 선임됐으며, 같은 달 법인이 설립됐다. 2015년 9월 국립부산과학관의 첫 번째 공채 직원 25명이 임용됐으며, 그해 12월 11일 개관을 확정지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2004년 시와 시교육청, 주요 대학, 연구기관, 상공인들, 언론 등 부산을 이끄는 6대 주축세력이 결성한 사단법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부산시, 부산시교육청 등과 연계해 미래 과학인재 발굴 및 육성과 과학문화 확산 활동을 주력으로 하는 단체로 과학관 건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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