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4주년] 진영논리·양극화 사회, 관용·포용이 '통합의 첫 단추' 인식해야

노경민·최진규 2025. 7. 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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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패널. 왼쪽부터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송리라 경기도여성가족재단 박사, 박동찬 이주민 인권단체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박진형 제38대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한국 사회가 날로 금이 가고 있다. 진영 논리의 양극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젠더 갈등, 이주민에 대한 차별, 자산 빈부 격차 등 어느 분야에서 빠짐없이 갈등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적 격변을 기점으로 더욱 골이 깊어지면서 여러 파편으로 조각날 위기에 처했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지난 5월 한국리서치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집단별 갈등인식 조사'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대, 성별 등 분야별로 최소 59%에서 최대 94%까지 갈등이 크다는 응답이 나왔다. 오늘날 SNS와 인공지능(AI) 발전에 힘입어 갈등과 혐오의 표현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화해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창간 기획 <봉합의 시대>는 우리 사회에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다시 봉합하고, 화합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모색했다. 중부일보는 각 분야의 대표자들에게 사회적 갈등의 현실과 봉합의 길을 물었다. -편집자주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혐오의 언어' 만연…"국가 기틀 흔들릴까" 위기감도
각 분야의 대표자들은 12·3 비상계엄 및 탄핵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박동찬 소장은 이번 탄핵 정국에서 분출된 반중을 넘어선 혐중 정서가 사회 기저에 만연한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중국에서 재외동포(F4) 비자로 국내에 온 그는 이주민 인권을 위해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라는 인권 단체를 결성했지만, 유독 이번에 제기된 '중국인 부정선거 의혹'은 뼈아프다. 해당 의혹은 정치권의 이슈로 달궈졌고 일반 시민들까지 들썩이게 할 정도로 갈등의 불씨를 촉발하는 요인이 됐다. 박 소장은 최근 제기된 중국인 의혹에 대한 이유로 반공·종북 프레임이 더 이상 시대적 소구력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는 "다양한 방식과 경로를 통해 중국 혐오는 재생산돼 왔다"며 "이주민 270만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데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사회적 대화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갈등의 정도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주민 갈등이 제대로 관리되기는커녕 조장되고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일상적 차별과 제도적 배제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데다 사회적 분노의 희생양이 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코미디언 출신 정재환 공동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민주주의가 벼랑 끝에 몰리는 아찔한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정 공동대표는 요즘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언성을 높이는 경우를 자주 본다고 한다. 비단 온라인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새 정부의 출범에도 진영 갈등은 좀처럼 완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모임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금기시된 건 오래된 일이다.
박진형 제38대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그는 사회적 갈등의 이면에 '말의 온도'가 있다는 점을 집중했다. 정 공동대표는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말이 흐트러지면 사회도 흐트러지고, 말이 거칠어지면 사회도 거칠어진다'고 했다"며 "말도 생물이어서 생로병사한다. 말을 만드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어떤 말을 사용할지 신중해야 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착짱죽짱'(중국인 비하 표현)과 같은 혐오성 발언은 국가 간 갈등을 유발하고 실익 없이 부메랑처럼 손해만 돌아올 뿐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편 가르기성 언어, 상대를 증오하는 혐오의 언어가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박진형 총학생회장은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갈등의 정도가 심해지면 무력감이나 냉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박 회장은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민주주의 원칙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우리의 정치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나'는 근본적 물음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한다. 집회 등을 통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혼란과 피로감에 사무쳐 '정치 혐오'로 빠진 학생들도 있다. 그는 "12·3 비상계엄 사태는 단순히 정치적 사건이 아닌 공동체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는 실존적 위기였다"고 우려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화해의 단추 맞추기엔 이미 늦었다
정치 전문가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사회적 갈등의 첫머리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갈등 현상을 부추긴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신율 교수는 이미 정당 정치가 분화될 대로 되면서 화해의 단추를 맞추는 시간을 놓쳤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정치적 갈등의 단초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출범한 제17대 국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이때부터 양당의 대화는 실종되기 시작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 분야에 존재했던 이분법적인 구도가 사회에 전이됐다"고 분석했다. 뒤이어 정치인의 '팬덤 정치'가 활성화하면서 진영의 양극화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진영의 양극화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다. 정치인이 SNS를 통해 소통하게 되면 유권자들은 '나의 이야기에 응답해 줬구나'라며 개인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며 "친밀감이 추종이 되고 점차 유튜브를 타고 '팬덤 문화'로 형성돼 갔다. 소수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리라 경기도여성가족재단 박사

◇젠더 갈등에 자산 격차도 점점 벌어져
사회적 갈등은 정치적 분야에 국한돼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이나 경제 분야 등 일상에도 갈등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다. 송리라 박사는 현대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젠더 불평등이 공고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성별 임금 격차 등 여성들의 유리천장이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어 노동시장 진입부터 존재하는 구조적인 불평등으로 좌절감을 느끼는 여성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남성들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고자 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쉽지 않다. 오히려 '일하는 만큼 보상을 받는 구조'라며 정당함을 피력하며 맞서기도 한다. 노동 분야를 바라보는 남녀 사이의 시선이 크게 다른 것인데, 이러한 시각차는 각종 분야에서 나타나곤 한다. 어느 누구의 정답이 아닌 차이의 문제인데 갈등의 정도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터라 합의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송 박사는 "조부모 세대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 불평등을 언급할 수조차 없었다"며 "어머니 세대 때부터 교육 수준이 높아진 데다 경제활동 참여율에도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고 딸 세대에선 불평등을 지적할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젠더 폭력과 관련한 이슈가 제기되면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며 "반대로 남성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발)'가 나타나면서 젠더 갈등이 심화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사회적 갈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있을까. 한국 빈부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산 격차'라고 꼽은 김은경 선임연구위원은 '한탕주의'에 기반한 부동산 문제가 빈곤과 부의 세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위원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치며 부동산은 부의 축적 수단이 됐고, 이제는 좋은 교육을 받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선 부모의 자산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계층 간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개천의 용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부동산 자산 격차는 고령층 빈곤화 속도도 높이고 있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뿐만 아니라 구직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고령층에 대한 더욱 각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서구 선진국은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고 장기간 축적된 연금 혜택을 누리고 있어 빈곤율이 낮지만 한국은 정반대 이야기"라고 말했다.
 박동찬 이주민 인권단체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사회적 소수자 포용이 통합의 길…"갈등 푸는 언어 중요"
그렇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짚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선 어떤 방안을 모색해야 할까. 대다수 전문가는 '포용'을 기치로 한 통합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어떠한 분야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율 교수는 '통합 정치의 복원'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그동안 우리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축소하는 제 기능을 살리지 못하고 갈등을 외려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며 '진짜 정치'의 실종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다수결이 아닌 소수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라며 "소수 정당들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그래도 묻히진 않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면 양당 정치가 극단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에서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득표 차로 낙선했음에도 소수자로만 묵살당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이라며 "견제 장치가 없으면 소수의 의견은 점차 무시당하고 지금과 같은 양보 없는 정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의 지적처럼 사회 봉합에 가장 앞장서야 할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에 소홀하다는 게 국민의 보편적 인식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8월 '2024 사회통합 실태조사'를 통해 8천251명을 대상으로 분야별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의 정도를 물은 결과, 국회와 정부가 각각 5점 만점에 2.6점과 2.8점으로 평가 대상인 9개의 분야 중 나란히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사회갈등 해소에 중심이 돼야 할 기관으로는 정부와 국회가 각각 29.7%, 17.8%로 가장 높은 지목을 받았다. 사회 갈등의 해결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실제 모습 간의 상반된 인식 결과가 도출된 만큼, 정치권이 통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제라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의미를 던진다.

"통합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재환 공동대표는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음을 열고 서로 간의 이해를 기본 바탕으로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람은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만 하지 말고 더 많이 들으라는 뜻 아닐까요." '말의 힘'을 믿는 정 공동대표가 수년간 찾은 해법은 이러했다. 그는 "정치권이 상대를 비하하고 혐오와 저주를 쏟아내기만 해 아찔할 때가 많다. 사회 지도층의 언어가 국어의 모범이 돼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라며 "대립의 골을 깊게 파는 언어를 삼가고 서로 협력하면서 갈등을 푸는 언어를 사용하자"고 제시했다.

"사회적 차별 현상이 심화할수록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편가르기, 낙인 행위와 결별하는 게 통합에 가장 도움됩니다." 여성 분야 전문가인 송리라 박사는 젠더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 이주민 갈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갈등을 부추기는 대결 구도의 편가르기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번 이슈화하는 아젠다 속에 제도적으로 배제돼 온 소수 집단을 되살펴보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좋은 제도가 시행돼도 항상 소외되는 집단은 없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그런 주의를 기울이면 통합된 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 데 큰 거름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회적 연대 통한 보편적 가치 중요
김은경 선임연구위원은 복지국가를 대표하는 스웨덴의 모델인 '포용적 성장 전략'의 경험을 되새겨 '보편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용적 성장 전략이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을 높이면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보편적 기본서비스 모델이다. 김 연구위원은 "복지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 구성원의 연대에 기반해 빈곤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 통합과 연대를 강화해 건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모든 시민이 양질의 복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편적 원리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은 보편적 기본서비스의 현실적 타당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준다"면서도 "복지 인프라 확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선 복지가 '무료 점심'이라는 인식을 없애면서 복지 확대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지출의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별 특성에 맞는 보편적 기본서비스의 영역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지역 기반의 서비스 도입도 중요하다"며 "고령화율이 높은 낙후 지역에 시범 선정할 필요가 있고 경기 북부에 우선적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인식하나 마음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박동찬 소장은 이주민의 유입이 이질적인 문화의 유입과 동일시하면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원활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 해법은 민간보다는 정부 차원의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보급하는 노력이다.

박진형 총학생회장도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공동체의 분열을 우려하며, 정치권을 향해 갈등 조장이 아닌 사회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노경민·최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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