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이 노래하고, 호수가 말 건네고, 숲은 토닥여줬다 신이 직접 쓴 교향곡, 로키

2025. 7. 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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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 이 지면을 읽는 독자는 사진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비현실적인 풍경이 존재한다고? 호수 빛깔이 진짜 이렇다고? 의심할지도 감탄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트레킹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의심하거나 감탄을 하거나 아니면 너무나 아름다운 건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 지면을 그냥 넘겼을 수도. 나는 글을 쓰면서 과장하거나 부풀려 표현하기를 늘 주의하고 있는데,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이런 믿기지 않는 풍경들이 거기선 그냥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일정의 첫날은 캐내내스키스 어퍼레이크 트레킹이었다. 캘거리에서 1번 국도를 타고 달리는데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산맥들이 나타났다. 드디어 로키산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태평양의 바다였던. 여행사 대표와 현지 가이드, 두 명의 숙련되고 믿을 수 있는 안내자를 제외한 일행들이 동시에 카메라를 꺼냈다. 로키를 흔히 '대자연의 완결판'이라고 하나, 내 눈에 로키는 겹겹의 많은 이야기를 가진 서사시, 신을 품고 있는 듯한 숨 쉬는 자연, 그것이 산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은 시각적 생명체처럼 보였다. 자꾸만 따라가고 싶고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이지eassy' 트레킹이라고 해도 나 같은 초보에겐 힘이 드는 길인데 한 발 한 발 최선을 다해서 걷게 되었다. 걸을수록 로키와 가까워진다는 스스로와의 만족감과 순수한 기쁨 때문에.

숲길에 감춰진 듯하다 홀연히 드러난 캐내내스키스 어퍼레이크의 물빛을 보았을 때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만지면 그대로 옥빛이 손끝에 묻어날 것 같은 투명한 호수 표면에 반영(反影)된 청록색 로키. 침묵이 흘렀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말을 잃게 되듯. 가이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날마다 더 굉장한 호수와 장관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 말이 실현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첫날만으로 충분히 보았다는 느낌까지 받아서.

셋째 날부터 숙소를 '로키의 관문'이자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인 '밴프', 그것도 메인 스트리트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더 굉장한 레이크 호수, 페이토 호수, 모레인 호수로 이어지는. 더 장엄하고 더 압도적인 로키의 부분 부분들이 눈을 뜨면 보였고 한 걸음 올라갈수록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한 숲과 산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산양, 사슴, 엘크, 땅다람쥐들, 쌓인 눈 속에서도 빼꼼히 피어나고 있는 들꽃과 야생화들이 바로 곁에 있었다. 어디에나 생명력이 폭포처럼 넘쳐흘렀다. 그동안 가보기 힘든 나라들을 가보기도 했고 이런 대자연도 처음은 아닌데 그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나왔다고,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움직여 '사람이 걸어 올라가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컬럼비아 대빙원에서 2만년 전에 형성된, 알래스카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직접 밟아볼 수 있는 유일한 빙하를 걸어본 체험도 잊을 수 없다. 깨끗한 빙하 밑으로 에메랄드빛 호수들이 비쳤다. 그 위에 손바닥을 대자 차갑고도 명징한 기운이 온몸으로 번져드는 듯했다. 자연이 잠깐 허락해준 10분. 이건 정말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경험일 거야. 겸허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온난화로 1년에 10m씩 빙하가 줄어들고 있어 언제 이 '설상차 만년설 빙하 체험' 프로그램이 중단될지 모른다고 한다.

사람들은 로키의 어느 호수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상적이라고 기억할까? 고도 600m의 라치 밸리 텐 픽스(Ten Peaks) 10개 봉우리를 오르는 나흘째 이른 아침. 깊은 숲에 호수가 하나 있었다. 크지 않으면서도 성성한 기운이 도는, 청색 인디고 빛에 윤슬이 반짝이고 눈 덮인 봉우리들이 수호신처럼 둘러싸고 있는. 여행하는 동안 소중한 몇 번의 자유 시간이 있었다.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호수 앞 벤치를 떠나자 나는 가만히 한끝에 앉았다. 오직 모레인 호수만 바라보고 있던 그 30분. 사위가 믿기지 않을 만큼 호젓하고 고요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고 여기서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트레킹을 온 건데 지난 인생이 되짚어졌다. 호수의 색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빙하가 녹은 자리에 생긴 침전물인 석회질이 빛을 받아 만들어지는 색깔이.

그렇게 모레인 호수 앞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체력은 없고 지구력만 있어 마음이 더 힘들었던 나는 어쩌면 그날의 트레킹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이번 일정 중 절정이 되었던 라치 밸리는 최소한 네 명 이상이 돼야 트레킹을 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회색곰과 흑곰의 서식지이므로. 구불구불한 길에서 바람과 눈과 비를 만났다. 종종 햇빛도 났다. 사계절이 지나가는 듯했다. 어느덧 '히말라야와 가장 가까운' 풍경이 높고도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름에도 녹지 않는 빙하를 봉우리에 척 걸친, 뭔가 간절히 기도하고 싶게 하는 절경이. 눈으로 본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모자를 눌러쓰고 숨죽여 울었다. 감탄과 탄성과 새로 배운 겸손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선물 같은 시간에 대한 감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6박8일 동안 53㎞쯤 걸었다. 걷고 오르고 올라서 신비롭고 내밀한 성자를 보았다. 이 일정은 가을에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이 트레킹의 중심엔 '캐나다 로키의 모든 것을 집약해 놓은 것과 같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밴프가 있다. 캐스케이드산도 주민처럼 보인 밴프에서 지낸 사흘. 이 여행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먼 훗날에도 나의 캐나다 로키 트레킹은 '밴프'라는 모두의 고유명사와 '밴프에 가본 적이 있었다'란 애틋한 개인적 동사로 남을 것 같다.

어떤 핑계를 찾는다. 이번엔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고. 라치 밸리의 나무들은 침엽수인데도 가을이면 단풍이 들어 계곡 전체를 노란색으로 물들여 '골든 밸리'로 불린다니 9월에 다시 가면 그 장관을 볼 수 있다고. 지금껏 트레킹에도 단체여행에도 관심 없었던 나는 이런 계획을 세우는 사람으로 달라졌다. 8일간 일행이 있어도 혼자 있을 수 있고, 혼자이고 싶지 않을 때 언제든 다정하고 경험 많은 일행이 곁에 있었다. 맑은 마음으로 돌아왔다. 로키를 가슴에 안고.

소설가 조경란 캐나다 로키를 걷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승옥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혀' '복어' 등을 펴냈다.

캐나다 로키 트레킹을 즐기려면 = 트레킹이라고 겁먹을 필요 없다. 로키산맥 트레킹 여행은 걷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걸으며 만족시킬 수 있는 이지(Easy) 트레킹 코스로 승우여행사 이원근 대표가 직접 걸으며 만든 일정이다. 더 자세한 일정은 2대를 이어 27년간 트레킹을 하며 길을 걷고 있는 승우여행사 누리집에서 확인. 9월과 10월 그리고 내년에는 6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회씩 출발한다. 향후 3년간은 지구 자기장이 강해 운이 좋으면 오로라도 볼 수 있다.

※취재협조= 승우여행사 / 알버타 관광청

[캐나다(로키) 조경란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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