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0장] 황룡촌 전투(180회)

고군산 수군절도사(첨절제사) 이태형은 군 선단을 이끌고 고군산열도를 지나 칠산바다로 남하했다. 태풍이 몰아쳤지만 숙련된 수군 사공들은 능숙하게 노를 저었다. 부안 변산반도 앞 솔섬에 경군선(京軍船)이 피항하고 있었다. 피항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상당수의 군선이 태풍을 못 견디고 깨진 상태로 묶여 있었다.
이태형이 경군선의 수장을 불렀다.
"태풍이 부는디 웬 원정인고?"
"민란을 제압하기 위해 증원군으로 증파된 병력입니다."
"내가 바다를 지키는디 내 허락도 없이 지나가도 되는가? 이러니 기후 예측도 못하고 배가 깨지고, 병사가 다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중앙군으로서 오직 중앙도원수의 명을 받을 뿐이오."
"바다 사정을 모르고 중앙군 명령이라고 무조건 따르다 보면 태풍을 만나 싸워보지도 못하고 병사들이 물골에 처박힐 수 있다. 태풍은 바다에 뜬 모든 것을 험한 물골에 처박는 습성이 있다.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무모한 모험을 하는가. 내 도원수의 명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주기 바란다."
"잘 되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병선을 움직일 수 없으니 육로로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수 척의 병선단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 모두 육지로 올라가면 필시 병선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 전력 손실을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병선을 섬에 단단히 묶어두고 바람이 잦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수군절도사인 내가 너희 병선을 지휘한다. 한 사람도 다쳐선 안되기 때문에 내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묶어두고 이태형은 함평만의 주포로 달려갔다. 바닷가 움막집에 이르러 사람을 불렀다.
"요시무라!"
양아들로 삼은 일본인 병사 출신 이름이다. 사적으로는 신혼살림을 잘 꾸리고, 공적으로는 그의 심부름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었다.
"요시무라, 집에 없나?"
그러자 집 뒤꼍에서 요시무라가 나뭇가지를 가득 실은 지게를 지고 마당으로 나오다가 이태형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아이쿠, 다이푸 상(대부님) 오셨스무니까.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였겄습니까만, 요시무라라니요? 그새 나의 이름을 잊었스무니까. 본인은 이요식이무니다."
순간 이태형이 자신이 직접 요시무라와 음독이 비슷한 조선 이름을 지어준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을 되새겼다.
"그래, 깜빡 잊었군. 미안한 일일세. 요식이 잘 있었는가. 보아하니 신수가 좋아 보이니 다행이로다."
"너무나 행복하무니다. 날마다 감사하게 살고 있으무니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서 거의 맨입으로 살고 있으무니다."
이태형이 용건을 말했다.
"낙월도에 간 일은 잘 되었는가?"
그를 낙월도에 파견한 것은 상인으로 들어온 일본인의 동태를 감시하고, 군자금을 마련하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근래 일본인들이 부쩍 조선 땅에 들어왔다.
"닥상이노데스."
요시무라가 짧게 대답하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그를 헛간으로 이끌었다. 쌓인 볏짚 더미를 헤치더니 커다란 보퉁이를 끄집어냈다.
"도둑질 당할까 봐 여기에 숨가 놨으무니다. 왜인 상인들을 협박해서 뜯어냈스무니다. 조선 화폐 단위를 잘 모르지만 쌀 백가마니 값은 된다고 하였스무니다."
"수고했다. 이걸 황룡촌으로 달려가 손화중 대접주나 촤경선 영솔장에게 전달하고 오기 바란다."
"그 길을 잘 모르무니다. 또 길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무니다."
"필십리 길이 조히 될 것이다."
"병신이 된 몸으로 어떻게 거기까지 가겄습니까이. 그라고 동네 밖을 나가보들 안한 사람인디요."
어느새 요시무라의 아내 염산댁이 달려 나오더니 토를 달았다. 남편을 생각하는 어린 신부를 바라보며 이태형이 대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서방을 모시는 것은 장하오. 내 그럴 줄 알고 망운 목동에서 기른 명마를 한 마리 구해줄 것이오. 그걸 타고 다니면 성한 사람 열 몫을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