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자화상 - 윤동주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시를 좋아한다. 동주의 시에는 식민지 청년이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한 자기고백과 자아성찰을 통한 극복의지가 있다.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역사적) 자아의 내적갈등은 저항정신으로 표출된다. '참회록'에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 화자가 나온다. 우물은 자아성찰의 매개체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참회록'에 나오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도 마찬가지이다. '자화상'에는 자신에 대한 미움과 연민이 짙게 배어 있다. 페이소스(파토스)를 느끼는 이유이다. 그리고 '파아란 바람'이 참 좋다.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촉각을 시각화한 공감각적 표현으로 시적 허용을 통해 파란을 강조하고 있다.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이육사의 '절정'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 이런 표현들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