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도시로의 변화, 제물포 개항장

기호일보 2025. 7. 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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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83년 1월 1일 제물포의 개항은 부산(1876년)과 원산(1880년)에 이어 3번째였지만 서울로 진입하는 최단거리라는 입지로 인해 신문물은 인천을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인천은 그간 바다를 통한 대외교역의 중심지였던 부산항보다 그 비중이 높아지고 새로운 요충지로 떠오르게 됐다. 인천 개항장에는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행정구역을 설정했다. 각국공동조계는 일본 및 청국조계를 둘러싼 형태였으나 이곳에 거주한 서양인은 많지 않았다. 반면 유입 인구가 증가한 일본인들이 이곳 외국인 조계지를 임대해 거주했는데 후일 각국공원(현재의 자유공원)과 같은, 당시로 봐서는 파격적인 한국 최초의 공원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임대료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개항장에는 일본, 청국, 러시아 등 각국의 영사관과 감리서, 해관(세관) 등 개항과 관련한 관청들이 세워졌으며 이를 중심으로 각국의 상·공업시설과 종교·교육·문화시설들이 빠르게 설립됐다. 근대건축물은 개항장의 이국적인 정취를 한껏 더했다. 세창양행 숙사, 파울바우만 주택, 헨켈 저택, 오례당 주택, 존스톤 별장 등 자유공원 응봉산 일대 건립된 외국인들의 주택은 마치 유럽의 한 도시를 방불케 했다.

제물포 개항장에는 앞서 중국과 일본에 진출해 있던 서양의 상사들이 가장 먼저 상륙해 사업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소규모 상점과는 달리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했고 사업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도 그들보다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조선에 제일 먼저 진출한 상사는 영국계 이화양행이었으나 가장 오랫동안 두드러진 활동을 남긴 것은 독일계 세창양행이었다. 미국 상사의 진출도 활발했다. 모스·타운센드상회는 한국인 객주와 상인들에게 자본금을 대여하기도 했는데 증기력을 응용한 타운센드정미소를 운영했고 월미도에 약 50만t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창고를 지어 미국의 거대석유기업 스탠다드석유회사의 독점판매권을 획득했다. 알렌, 모스. 타운센드, 데쉴러 등은 서울과 인천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미국인 4인방으로 금광 개발, 경인철도 부설, 하와이 이민사업 등을 주도하면서 큰 족적을 남겼다.

조선을 방문하는 외국인 고객들이 늘면서 새로운 숙박시설을 필요했다. 다다미가 설치된 일본식 '여관'과 침대와 가구, 투숙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양식 레스토랑, 연회시설 등의 부대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호텔'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로 들어가기 위해 하루쯤 하루쯤 묵어야 했던 인천에는 대불호텔과 스튜어드호텔 등이 성업했다. 양탕국이라고 불리던 커피도 제공했다.

제물포 개항장에는 상인만이 아니라 기독교 선교사와 신부들도 들어왔다. 서양인이 공식적으로 조선에 상주하게 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수교로부터 시작됐다. 외국인의 입국이 자유로워지자 조선 선교의 가능성이 타진됐고 의료와 교육 사업을 시작하라는 고종의 윤허도 있었다. 이에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에 도착했는데, 이날은 조선에 기독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한 날이다.

또 무역 관세를 징수하는 외국인들, 관세와 예금, 대출 등을 관리해야 하는 서양과 일본 은행의 등장은 인천에 외국인의 증가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제물포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외교활동은 이른바 '제물포 정략(Chemulpo Politics)'이라 표현할 만큼 그 열기가 대단했다. 외국인들의 방문과 정착으로 제물포 개항장은 당시 조선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각국의 전방위적 통상 전초기지였던 것이다. 인천은 서양과 일본의 근대문명이 속속 등장함으로써 조선의 '국제도시 인천'으로 변모하는 거대한 실험이 이뤄졌다. 그리고 개항부터 시작된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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