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끝, 평화 시작’?…식상한 학원물은 이제 없다
조용한 모범생 주인공이 어느 날 일진 무리의 타깃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나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천재적인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괴롭힘을 일삼는 학교 안 ‘빌런’들을 하나씩 물리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학교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동안 학원물 드라마는 이런 식의 전개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틀을 벗어난 학원물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학생회장 선거를 둘러싼 정치 싸움을 소재로 한 티빙 ‘러닝메이트’, 마냥 선하기보다 폭력에 물들어가는 주인공을 내세운 웨이브 ‘원: 하이스쿨 히어로즈’ 등이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티빙 ‘러닝메이트’는 불의의 사건으로 전교생의 놀림감이 된 노세훈(윤현수)이 학생회장 선거의 부회장 후보로 지명되면서 온갖 권모술수를 헤치고 당선을 향해 달려가는 하이틴 명랑 정치 드라마다. 학생회장 선거에서 여의도 정치판 뺨치는 싸움이 벌어지는 설정은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세훈이 부회장으로 출마하자마자 주변의 대우가 달라지는 장면, 회장 후보 상현(이정식)과 원대(최우성)가 반듯한 얼굴 아래 욕망을 숨기고 있는 점,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모습 등은 현실 정치와 똑 닮았다. 이런 선거전의 민낯을 10대의 시선과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풀어낸다. 어제의 절친이 오늘의 경쟁자로 변하는 등 얽히고설킨 관계성 또한 재미 요소다.
영화 ‘기생충’의 공동 각본가이자 ‘러닝메이트’ 연출을 맡은 한진원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힘과 권력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며 “폭력적으로 다루면 노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었다. 피가 많이 안 나오고 사람이 안 죽는 학원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 감독은 또 “평범한 한 소년의 선거판 희로애락 스토리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소환하거나, 누군가에게는 지금을 반성하거나,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박차고 나갈 용기를 응원하고 싶다”며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권력의 이면, 이기심과 이타심, 존경심과 열등감, 우정의 유통기한, 절망에서도 자아를 찾아가는 용기 등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5월30일 공개된 웨이브의 웹툰 원작 드라마 ‘원: 하이스쿨 히어로즈’는 익숙한 학교폭력 소재를 가져왔지만 이야기의 방향은 기존 학원물과 차이가 있다. 아버지의 억압에 시달리던 전교 1등 의겸(이정하)과 그의 천부적인 싸움 재능을 이용하려는 윤기(김도완)가 ‘하이스쿨 히어로즈’를 결성해 학교폭력 서열을 뒤엎는다는 게 큰 줄거리다. 조용하던 주인공이 타고난 재능으로 일진을 제압하는 얼개는 ‘약한영웅’, ‘스터디그룹’, ‘소년시대’ 등 여러 학원물 드라마와 비슷하다. 하지만 기존 드라마 주인공들이 끝내 선한 인물로 남은 것과 달리, 억압과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택한 의겸은 점차 폭력에 중독되어간다.
극 후반부에서 의겸은 “도대체 왜 싸움을 하냐”는 아버지에게 이게 자신의 첫 비행이라고 말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 무명고로 전학을 가며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한바탕 싸움 뒤 학교에 평화가 찾아오는 여느 학원물의 결말이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무리와 비슷해져가는 결말은 통쾌함보다 찜찜함을 안긴다. 히어로보다 안티히어로의 서사인 셈이다.
이러한 학원물의 변주에 대해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교수)는 “이전의 학원물은 주로 학교폭력과 학생들 간 문제에 국한된 이야기를 다뤘다면, 지금은 장르만 학원물이고 그 안에서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실제로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학원물은 여러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좋은 장르”라고 짚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주제와 표현 방식이 똑같으면 식상해지니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되는 것 같다”며 “기존 학원물이 왕따나 폭력 일변도로 가다 보니 거기에서 탈피해 내용을 다변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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