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의 사랑은 영화가 될 수 있을까?
<45> SBS 드라마 '우리 영화'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자신이 죽을 때를 미리 안다는 것은 자못 초현실적인 일이기에 창작물에서 시한부 설정은 빈번하게 이용된다. 연인과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가족 간의 책임…. 죽음을 앞둔 사람의 제한된 시간은 갈등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고, 관계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삶을 상상하는 것과, 내게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하며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많은 이가 불치병, 시한부 소재의 창작물을 진부하다고 여기는 데에는, 작품이 유도하는 불완전한 공감이 실제 시한부들의 삶이 아니라 극적 장치로서의 죽음에만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SBS 드라마 ‘우리 영화’ 역시 시한부에 대한 드라마다. 이제하(남궁민)는 한때 ‘거장’으로 추앙받던 영화감독 이두영의 아들이자, 데뷔작 이후 몇 년째 차기작을 내지 못하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절친한 제작자가 아버지의 유작인 ‘하얀 사랑’을 리메이크하자고 제안하지만, 제하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얀 사랑’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연인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극중 인물과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아버지는 내연 관계의 여배우와 이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제하는 ‘하얀 사랑’의 각본을 쓴 것이 자신의 어머니란 사실을 알게 되고, 오랜 고민 끝에 리메이크 영화의 감독을 맡기로 결심한다. 각색 작업에 돌입한 제하는 시한부 환자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고, 그에게서 다음(전여빈)을 소개받는다.
시한부 판정으로 인해 배우의 꿈을 접고 방황하던 다음은, 제하에게 자문을 해주던 중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하얀 사랑’의 오디션에 참여한다. 다음은 시한부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자신이야말로 이 역할에 어울린다고 자신하지만, 제하는 촬영 도중에 다음이 죽을까 두려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언제까지 살 수 있는데요?” 다음은 시한부가 아닌 배우로서의 각오로 답한다.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건데요?” 제하와 다음의 ‘우리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 영화’는 설정상 전형적인 ‘시한부 로맨스’지만, 시한부의 삶과 죽음을 '작품 속 작품'으로 전유하여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감시한다. 작품 속에서 병과 죽음은 다음이 삶을 위해 인정한 자신의 일부이며, 그 경험을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오롯이 재현할지 질문하는 성찰의 계기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투병을 지켜본 제하는 아픈 상태에서도 영화의 각본을 완성했던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현실의 고통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다음이 제하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제하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거절의 의사를 전달한다. “당신의 죽음이 노이즈 마케팅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리는 같이 영화를 만드는 사이다.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존재한다.” 다음과 제하의 대화 속에는 ‘당신의 죽음까지 사랑’한다는 통속적인 신파 대신, 시한부와 그 주변인들이 겪는 관계 맺기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시 말해, ‘우리 영화’는 시한부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그 클리셰가 감추는 현실을 추궁하고, 죽음에 깊게 연루된 두 예술가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지를 포착하는 작품인 것이다.
‘우리 영화’는 병과 죽음이 만드는 비극에서 감동을 취하는 대신, 죽음에 이르는 게 얼마나 지리멸렬한 과정인지를 말한다. 통속적인 신파에 휘말리기엔, 시한부는 죽기 직전까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불안과 나의 상태와 관계없이 책임을 물어오는 세상에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작품은 병과 죽음을 짜깁기해 자극을 소비하는 현실 속 대중문화와, 그것에 녹아있는 관성들을 꼬집으며 삶의 유한함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모하게 영원을 전제해 왔는지 성찰한다.
신파극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장르다. ‘우리 영화’는 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슬픔으로 노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것으로 바라볼 때 제하와 다음이 겪는 망설임과 불안이 비로소 사랑의 언어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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