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권노갑 옹이 던진 '골프 화두'

방민준 2025. 7. 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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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사진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요즘 골프 좀 친다는 사람들 사이에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화제다. 최근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95세의 나이에 70타를 기록했다는 소식과 함께 '골프 노익장'의 비결이 언론에 보도된 뒤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60세가 넘어 골프를 배워 30년간 100타 언저리를 맴돌다가 아흔이 넘으면서 캐디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은 뒤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는 얘기에 골프와 애증의 골이 깊은 60~70대 골퍼들이 칠흑 바다에서 등댓불을 발견한 듯 그를 화제로 삼는다.



 



권 이사장은 지난달 24일 경기도 군포의 안양CC에서 정·재계 요직을 거친 지인들과 가진 정기 골프 모임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생애 최저타를 기록했다.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낮은 스코어인 에이지 슛(age shoot)을 종종 기록했지만 언더파 기록은 처음이라고 한다. 평소 80~90타를 치고 종전 최저타 기록은 82타다. 



 



동반자들이 80~90대의 고령들이라 화이트 티(6387야드)가 아닌 시니어 티(6082야드)를 사용했다고 해도 90대 중반을 넘어 자신의 나이보다 23타나 적은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첫 홀을 파로 시작한 권 이사장은 15번 홀(파4)에서 그림 같은 샷이글을 만들어냈다. 125야드(114m)를 남기고 7번 유틸리티로 두 번째 샷을 날렸는데 볼이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날의 스코어카드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다. 권 이사장의 스코어는 이글 외에 버디 5개, 보기 5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 동반자 3명은 82타로 기록돼 있다. 무려 12타 차이다.



첫 홀과 마지막 홀이 모두 파로 기록되고 더블보기 이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라운드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렇더라도 비슷한 또래의 동반자들과 무려 12타나 차이 난다는 것은 권 이사장이 펄펄 날았다는 얘기다.



 



권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복싱 야구 유도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때 다져진 기본 체력에 요즈음도 매일 1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아령도 200회씩 하며 일주일에 2~3번 라운드한다. 라운드할 때도 가능한 한 걷는다.



 



골프 입문은 늦어 60세가 넘어서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DJ의 곁을 지키느라 골프를 가까이할 수 없었으나 DJ 때문에 골프를 배우게 됐다. DJ가 국회의원이 된 뒤 공부밖에 몰라 그도 골프를 안 쳤는데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에 가서 처음 골프채를 잡아 자신도 DJ를 따라 사흘간 레슨 받고 필드로 따라 나갔단다.



 



이후 기대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는데 90세가 넘어 골프장에서 만난 캐디의 원포인트 레슨에 골프가 확 달라졌단다. 그 캐디는 드라이버 백스윙을 위로 바로 들지 말고 옆으로 빼면서 몸통 회전과 함께 쳐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150∼160m 나가던 드라이버샷이 200m를 훌쩍 넘어갔단다. 쇼트게임과 퍼트 실력이 좋은 권 이사장은 드라이버샷이 살아나면서 골프 실력이 급상승했다. 덕분에 70~80대 후배들과 쳐도 항상 가장 좋은 스코어를 기록한다고.



 



학업에도 골프만큼 열성인 권 이사장은 2013년 한국외국어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최근 박사과정도 수료,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권 이사장의 골프 역정을 보고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터넷 명언'이 떠올랐다.



공자가 한 말이라는데 정작 한자 원문이나 출전은 실종되고 'It dose not matter how slowly you go as long as you do not stop'이라고 영어로 나와 있다. ChatGPT에 물어봤더니 서양에 공자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공자의 저서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대답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 권 이사장이 던진 골프 화두의 답이 아닐까 여겨진다. 



'발뒤꿈치를 들고 오래 못 서고, 가랑이를 넓게 벌리고 오래 못 걷는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조급하게 덤비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닦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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