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재능을 잠실로 가져가겠다” KBL 연고선수 최초 프로 직행! 에디 다니엘, SK 입단 꿈 이뤄내다

서호민 2025. 7. 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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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서호민 기자] “제1의 다니엘이 되겠습니다.” 2019년 6월,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당차게 포부를 내민 노란 머리의 장신 유망주는 그로부터 6년 후, 매 대회 MVP 타이틀을 독식하는 고교 농구 1인자가 됐다. 그는 대학과 프로의 갈림길에서 “나의 재능을 잠실로 가져가겠다”며 자신이 유소년 시절 입고 뛰었던 붉은 기사단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KBL 연고선수제도 도입 후 첫 번째 프로 직행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제1의 다니엘이 되겠습니다”라는 포부는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린 6월의 어느 날, 아직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지만 프로 타이틀을 달게 될 다니엘을 만나 왜 프로행을 택했는지, 앞으로의 농구인생에 있어서 꿈은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인터뷰는 6월 13일 진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Q__프로 직행을 선언한지 한 달여가 조금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아무래도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에 홀가분하고 프로에 가야하기 때문에 프로에서 요구하는 방향성에 맞춰 준비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고요.

Q__사실 다니엘의 프로 진출 여부는 오래 전부터 농구계의 초미의 관심사였어요. 여러 소문이 돌았잖아요. 언제, 어떻게 프로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나요?
5월 연맹회장기 대회를 마친 직후는 아니고 좀 지나서였어요. 사실 일전에 매체를 통해 전반기 끝날 때쯤 행선지에 대해 결정할 거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잖아요. 가족들 그리고 용산고 코치님들과 상의해보니까 미래를 생각했을 때 프로에 바로 가는 게 맞다고 판단해 SK행을 결정했던 것 같아요.

Q__프로행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프로 선수가 됐을 때를 가정했어요. 최종 목표가 프로 선수이고 성공을 바라본다면 남들보다 하루라도 더 빨리 프로 시스템을 경험하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어요. 이세범 코치님을 비롯해 주위 분들이 프로행을 결정하는 데 조언을 많이 해주셨지만 어쨌든 결정은 제가 해야 되는거니까. 제 생각대로 뚝심있게 밀고 나갔어요.

Q__항간에는 대학 무대를 1, 2년 정도 경험하고 얼리로 프로에 진출한다는 소문도 돌기도 했어요.
물론 대학도 고려 대상이었어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많이 고민했었죠. 한국 사회 자체가 연고대도 그렇고 학벌을 중요시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개인적으론 대학 생활에 대한 특별한 로망은 없었어요. 주위에서도 아직 한국 사회에선 대학을 가야 미래에 먹고 살기가 편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저한테는 농구가 곧 미래였거든요. 인생 전체를 놓고봤을 때 농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농구 하나만 놓고 봤을 때, 대학보다는 프로에 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Q__KBL 연고선수 최초로 프로 직행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달게 됐습니다. 다니엘 선수의 프로 직행 이슈는 여러모로 상징성이 크기도 한데요.
제가 KBL 장신자 발굴 사업 1호였는데 운 좋게 두 번째 1호 타이틀을 달게 됐네요(웃음). 하지만 1호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제가 프로에서 잘 적응해 좋은 선례를 남겨야 제가 걸었던 길을 따라올 후배들한테도 귀감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프로에 가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Q__프로 선수가 되는 것은 큰 변화일 수 있어요. 두려움과 설렘, 어떤 감정이 더 커요?
반반인 것 같아요. 먼저 걱정스러운 부분은 아마추어와 프로는 완전히 다른 세계잖아요. 프로는 성과를 내야하고 증명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경쟁도 더 치열하고 냉정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에서 부담감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고요.

Q__반대로 가장 기대되는 점 있다면요.
우선 농구를 잘하시는 분들과 같이 운동할 생각에 설레이고 프로에 계신 분들과 농구를 하다보면 뭔가 하나라도 더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어요. 또, 트레이닝, 재활 분야에도 전문가들이 계시잖아요. 세세한 부분들까지 경험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커요.

Q__프로는 훈련의 양이나 강도가 아마와 차원이 다르잖아요.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나요?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은 제가 있는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Q__지도자의 스타일에 잘 녹아드는 것도 프로 선수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예요.
전희철 감독님과 아직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우승 경력도 있으시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에요. 왜, 승리도 맛본 사람이 계속 맛본다고 하잖아요. 선수들의 입장을 많이 고려해주시고 성격적으로도 인자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농구적인 면에서는 수비를 중시하시는데 그런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전희철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농구에 빠르게 잘 녹아들어야 할 것 같아요.

Q__전희철 감독을 비롯해 SK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강점 한 가지를 어필한다면요.
중, 고등학교 엘리트 농구를 경험하면서 가령, 코치님께서 뭘 하나 지적하거나 주문하시면 코치님의 의견에 단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를 달지 않았던 거 같아요. 코치님께서 잘못된 내용을 저한테 알려주시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웃음). 어떤 지도자를 만나건 간에 그 지도자에 맞는 스타일에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해요.

Q__다니엘의 플레이스타일을 보고 ‘보법이 다르다’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만약에 프로에 가더라도 지금의 공수 플레이스타일을 계속 펼칠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진 장점은 그대로 펼치되, 디테일한 부분을 보완해야 될 것 같아요. 프로에서는 공 소유도 아마에 있을 때보다 더 적게 가져가야 하고 3&D 롤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해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출전 시간 대비 코트 안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Q__SK 선수들 중에선 안영준의 플레이를 가장 많이 본다고요?
팀에서 에이스 롤을 맡고 있는데 공을 오래끌기보다는 간결하게 플레이하면서도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모두 보여주시잖아요. 특히, 안영준 선수가 MVP 시즌 때 보여준 모습은 제가 앞으로 롤모델 삼아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Q__다가오는 시즌, 안영준과 양 날개에서 속공 달리는 그림을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우선 제가 잘해야겠죠. 하하. 그런 상황이 나올수만 있다면 큰 영광일 것 같습니다(웃음).

Q__화제를 좀 바꿔볼게요. 얼마 전 KBS 예능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 출연했어요. 방영 이후 용산고에선 유명 스타가 다 됐다고 하던데, 방송 촬영은 어땠나요?
즐겁게 촬영했고 재밌었어요. 촬영 스태프들이 새벽 운동부터 하루 일과가 끝나는 야간까지 저와 용산고 농구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취재해주셨어요. 다행히 주변 반응도 좋더라고요. 학교에서 알아봐주는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졸업 전에 용산고 농구부 동기들과 후배들과도 뜻 깊은 추억을 남긴 것 같아요.

Q__인터뷰나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말주변이 뛰어나다는 걸 느껴요. 타고난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좋아했어요. 대화를 많이 하다보니까 저절로 말 솜씨가 늘더라고요. 이것 또한 타고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__이웃집 찰스에서 자신이 다문화 2세인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될 때가 많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아요. 어떤 뜻에서 한 말인가요?
혼혈이라는 게 저만 좀 다른 거니까 그게 장점인거고, 특히 운동할 때 있어서 좋은 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부모님으로부터 운동하기에 좋은 DNA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주위에서 피부색이 남들과 달라서 어렸을 때 차별 대우를 받지 않냐고 많이들 물으시는데 저는 여태까지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전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거나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또, 그런 부분에 크게 신경쓰거나 개의치 않기도 하고요.

Q__어릴 적 얘기도 해볼게요. 처음에는 야구, 축구를 좋아했다 마음이 변해 농구로 갈아탄 케이스예요. 농구를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진 않죠?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농구로 갈아타 현재까지는 좋은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일들도 많아졌고 추억도 많이 쌓았고요. 운 좋게도 SK유소년클럽에서 농구를 시작했을 때쯤 연고지명제도와 장신자제도가 생기면서 많은 혜택을 받기도 했어요. 또, 중, 고등학교 때 청소년 대표팀에 세 번 다녀오면서 농구적인 부분에서 경험치를 쌓았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었어요. 다양한 경험을 한 게 앞으로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Q__주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키가 5cm 정도만 더 컸어도 한국농구 역사가 달라졌을 거란 얘기도 하곤 해요.
저도 키에 대한 아쉬움은 살짝 있긴 해요. 어렸을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키 크기 위해 좀 더 일찍 자고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도 저는 늘 그래왔듯이 키에 상관없이 저 자신을 믿고 플레이 하니까요. 자신있습니다.
▲유년기 시절 애런 저지를 꿈꿨던 다니엘?! 

Q__얼마 전, 뉴욕양키스 야구복을 입고 찍은 졸업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농구를 하고있지만 여전히 야구에도 꽤 관심이 많은가봐요?
맞아요. LG 트윈스 팬이에요. 졸업 사진은 친구들이 메이저리그 스타 애런 저지를 닮았다고 해서 뉴욕양키스 야구복을 입고 찍어봤어요. 어머니가 사진을 보시더니 농구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 나름대로도 만족스러웠고요. 하하.

 


Q__SK 유소년클럽 시절부터 지금에 오기까지 농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올해 전국대회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 우승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다른 대회보다 유독 대진운이 어려웠는데 그 어려운 대진운을 모두 깨고 우승을 차지해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고1 때부터 ‘내가 고3이 됐을 때 과연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첫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런 걱정이 싹 사라졌어요. 아 그리고 올초 동계 훈련 때부터 정말 단내나게 훈련하며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열심히 준비했던게 헛되이지 않았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Q__반면, 서울시 전국체전 선발전에선 라이벌 경복고에게 패하면서 전국체전 5연패의 꿈이 좌절됐어요. 이날 경기 끝나고 펑펑 울기도 했어요.
제가 중3 때부터 고2 때까지 체전을 못 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직전 대회에서 경복에게 진 걸 되갚아줘야 하는 것도 있었고 올해 가장 큰 목표가 체전 5연패를 달성하는 것이었거든요. 원래 울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아쉬워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제 자신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요.

Q__중·고등학교 때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함께 했던 신석(용산중), 이세범(용산고) 코치에게는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나요?
돌이켜 보면 지도자 복도 많은 것 같아요. 신석, 이세범 코치님 두분 모두 안 좋은 길로 빠지지 않도록 잘 인도해주셨어요. 중학교 때 신석 코치님께서는 엘리트 농구를 처음 접하는 저에게 기본기를 잘 다질 수 있도록 도움주셨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이세범 코치님을 만난 후로는 피지컬로만 하는 농구가 아닌 팀원들과 다 같이 하는 농구에 눈을 뜨게 됐던 것 같아요. 코치님께서 외곽 수비의 중요성과 요령에 대해서도 잘 알려주셨고요. 이외에도 프로에 갔을 때 어떻게 플레이야 하는지 또 프로 선수가 갖춰야 할 마인드셋(Mindset) 등 여러 방면에서 세세하게 지도해주셨어요.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듯이 다니엘은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이다. 그는 유년기 시절, 영국에 있는 아버지와 이별해야 했고 아버지와 헤어진 다니엘의 빈자리를 채운건 외할아버지 성열진 씨였다. 성열진 씨는 손자 다니엘을 뒤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뒷바라지했다. 대회가 열릴 때면, 늘 관중석 어딘가에 앉아 조용히 손자를 향해 응원과 격려를 보내곤 했다. 농구선수를 꿈꾸는 손자를 뒷바라지하면서 ‘다니엘의, 다니엘에 의한, 다니엘을 위한’ 맞춤형 전력분석원 역할을 자임하는 농구박사가 됐다고. 다니엘 역시 지금의 자신을 만든 건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손자 다니엘을 핏덩이 때부터 업어 키워 프로까지 보낸 성열진 씨는 “이제 내 할 일은 다 끝났다”며 후련한 미소를 보였다.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에디다니엘(좌)과 외할아버지 성열진 씨(우)


Q__다니엘의 성장기를 놓고 봤을 때 할아버지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한 셈인데, 본인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요?
음..어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농구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지인이나 주변분들이 대회장에서 할아버지를 보면 ‘다니엘 할아버지’라고 많이들 부르세요. 그 다니엘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많은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매번 대회장을 쫓아다니며 저를 서포트해주시는 것도 정말 대단하시고 감사한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제가 더 좋은 사람,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려고 해요.

Q__다니엘의 프로 직행 사례를 보며 연고선수를 꿈꾸는 유소년클럽 유망주들도 많을 거예요. 실제 연고선수 후배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기량을 갈고 닦고 있고요. 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준다면요.
각자 자신이 세워놓은 목표가 있을거예요. 농구선수로 가는 과정에 있어서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또, 여러 장애물에 부딪히게 될거예요. 훗날 돌이켜보면 그 힘들었던 과정들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__농구선수로서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요?
프로 무대에 잘 적응해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싶어요. 생김새와 이름은 남들보다 다를지 몰라도 저는 뼛속까지 한국인입니다. 입맛도 한국인이고, 심지어 한국말은 잘하는데 영어는 잘 못해요. 군대도 가야하고요(웃음). 나름대로 애국심도 있답니다. 하하. 청소년 대표에 이어 성인 국가대표까지 발탁된다면 진정한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는거잖아요. 엄청난 영광일 것 같아요.

Q__다니엘의 성장기는 <점프볼>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점프볼 독자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초등학교 6학년인 2019년도에 처음으로 점프볼 잡지 인터뷰를 했었는데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6년이 지나 프로에 간다고 해서 이렇게 또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에서도 잘 자리잡아서 또 이렇게 잡지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의 농구 인생도 많이 관심 갖고 지켜봐주세요.

Q__마지막으로 다음 시즌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보게 될 SK 나이츠 팬들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먼저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에 입단하기까지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해주신 SK 구단관계자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음 시즌부터 SK 일원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될텐데 팬들께는 열심히 하고 포기하지 않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요. 저의 성장세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겁니다. 6년 전, 점프볼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제2의 누군가'가 아닌 '제1의 다니엘'로 후배 선수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저만의 상징성을 잘 살려 에디 다니엘이란 이름을 KBL에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BOX_SK 관계자들에게 듣는 KBL 연고지명 제도가 걸어온 길 그리고 한국농구의 미래
KBL 연고지명 선수는 2018년 처음 도입됐다. 선수 연고제는 14세 이하 클럽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매년 2명까지 연고 계약을 맺고 육성한다. 이 선수들이 원할 경우,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 절차 없이 프로팀에 입단할 수 있다. 연고지명 제도를 기획하고 만든 장본인이 바로 현재 SK 농구단을 이끌고 있는 장지탁 단장이다. 장지탁 단장은 사무국장 시절부터 K리그 유스 시스템을 모티브 삼은 연고선수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KBL과 공감대를 형성해 제도 도입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연고지명제도 도입 8년 차. 마침내 처음으로 프로에 직행한 사례가 탄생했다. 에디 다니엘의 프로 직행은 SK 구단을 넘어 KBL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큰 경사다. 오랜 기간 다니엘의 성장기를 관찰하며 서포트한 SK 유소년 육성팀 역시 다니엘의 프로 직행 소식을 접하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허남영 SK 유소년 육성팀 팀장은 “장지탁 단장님께서 사무국장 시절, 연고선수제도 실무를 직접 보셨고 제도가 도입되기까지 공이 크시다. 제도가 도입되고 5~6년 동안 구단 관계자들이 노력하면서 연고선수들을 서포트했는데 이번 다니엘의 프로 직행으로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됐다”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말을 이어간 허 팀장은 “사실 처음 이 제도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이었다. 시행착오가 있었고 매년 KBL과도 꾸준히 소통하면서 발전 방안을 강구해나갔다”며 “다니엘에게도 큰 결정을 해준 부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농구계 발전을 위해서도 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다니엘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다니엘의 프로 직행은 ‘최초’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허 팀장 역시 이점을 강조하며 “SK 구단에서 연고선수제도가 도입되기까지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또, SK에서 연고선수 최초 직행 사례를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다니엘의 프로 직행 건은 뚝딱하고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구단 수뇌부는 물론 유소년 육성 실무를 맡고 있는 권용웅 팀장이 알게 모르게 많이 고생했다. 구단 수뇌부, 육성팀, 선수까지 삼박자가 고루 이뤄져 이 같은 결과물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결실을 맺기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SK는 KBL 10개 구단 중 유망주 육성에 가장 진심인 팀이다. 구단 연고선수를 따라다니며 서포트하는 것 외에도 매년 빅맨캠프와 주니어나이츠 유소년농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꿈나무 육성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다니엘이 1호를 끊은만큼 앞으로 각 구단이 점찍어둔 연고 선수들에 대한 진로도 관심을 받게될 터다.

SK 관계자는 “현대모비스 김건하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김건하까지 프로로 바로 간다고 하면 이 제도가 더욱 부각될 수 있을 것이며, 각 구단들도 유소년 육성에 좀 더 투자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라며 “다니엘이 최근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SK 주니어나이츠 대회 때도 꿈나무 선수들이 다니엘을 보고 많이 좋아하더라. 이렇듯 어린 선수들도 다니엘을 보며 이 제도를 한번쯤 들여다보게 되고, 또 자신들도 연고선수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에디다니엘 프로필_

2007년 4월 3일생, 포워드, 192cm, 삼광초-용산중-용산고


#사진_점프볼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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