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 ⑷ 히치하이킹 대소동

신시내 기자 2025. 7.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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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Pacific Crest Trail·미국 서부 종단 트레킹). 태평양 연안을 따라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무려 4300㎞나 이어진 장대한 길이다. 1년에 8000명 정도가 도전하지만 약 20%만이 성공하고, 일부 도전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완보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 고행의 길을 <농민신문> 자매지 월간 <전원생활>에 몸담았던 신시내 기자가 도전에 나섰다. 신기자의 PCT 무사 완보를 응원하며, <농민신문>이 그의 종단기를 독점 연재한다.
히치하이킹( Hitchhiking·여행 중이나 긴급 시에,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의 차량을 목적지 또는 도중까지 얻어타는 것)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보던 장면으로 다가올테다. 특히나 흉흉한 범죄 사례를 생각하면 무작정 길에서 모르는 이의 차를 얻어타는 일은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PCT에서는 조금 다르다. 깊은 산 속 트레일을 걷는만큼 마을과 연결되는 교통편이 드물기 때문에 히치하이킹은 재보급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우리의 첫 히치하이킹에 사용된 차. 움직이는 게 신기할만큼 낡은 차였지만 이마저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여행 52일 만에 뜨거웠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사막 지역 코스를 끝내고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이 즐비한 ‘시에라(Sierra)’ 지역에 들어섰다. 이 지역은 높은 산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으로도 유명하다. 이 지역에 오기까지 물자 보급을 위해 여러 마을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히치하이킹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친절한 이들이 우리에 기꺼이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덕분이다.

하이시에라 풍경 사진(포레스터 패스 등)

오늘은 여행 58일차,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산(Mt. Whitney)’의 입구인 ‘론 파인(Lone Pine)’ 마을에서 벌어진 웃픈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날도 우리는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트레일로 돌아가기 위해 오가는 차들에게 열심히 ‘우리를 태워달라’고 호소(?)를 보냈다. 30분의 기다림 끝에 흰색 승합차가 우리 앞에 섰다. 그가 마음을 바꾸기 전 서둘러 달려가 “코튼우드 레이크 트레일 헤드(Cottonwood lake Trail head)”라고 외쳤다. 우리의 목적지였다.

중년의 한 미국 남성이 “트레일 헤드?”라고 답하더니 타라며 문을 열어줬다. 그는 1980년대 UDT( Underwater Demolition Team·해군 수중파괴대)로 한국에서 근무했었다는 흥미진진한 무용담도 풀어놓았다. 그때였다. 좌회전을 해야할 차가 직진을 했고, 내 마음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아닌 휘트니 산에 있는 또 다른 ‘트레일 헤드’로 향하는 것이었다. 이 방향에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가 있는 듯했고 그래서 우리를 태워준 것 같았다.

‘다시 돌아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과거 대관령 고갯길을 능가하는 가파른 2차선 도로를 어렵게 오르는 그에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결국 휘트니 포털이라는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이틀 뒤에 어차피 휘트니 산에 오를 예정이긴 했지만 우리가 가진 허가증으로 이 방향에서의 입산이 금지 되어 있어 이대로 산으로 향할 수도 없었다. 출발점에서 차로도 1시간 떨어진 길이라 도저히 걸어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괴로운 것은 우리 뿐인 것 같았다. 

안내 지도를 확인하는 모습. 지도 속 빨간 동그라미 표기가 현 위치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반대 방향이었다.

시간은 2시. 초조한 기분은 뒤로하고 양심에 따라서 다시 론 파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의 모습을 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승합차 뒷칸을 정리하면서까지 우리를 태워주겠다며 먼저 권하는 것이 아닌가. 마을에 도착해서는 자신들이 가진 음료나 간식도 아낌없이 나눠주며 우리를 격려해주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두 번째 히치하이킹 후 모습. 이들은 ‘펫 헤드(Fat Head, 사진 가운데)’라는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를 응원하는 모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 시간 만에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하루에 한 번도 어려운 히치하이킹을 두 번이나 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시간은 곧 3시. 산으로 향하는 이가 드문 늦은 때였다. “만약 오늘 못 돌아가면 모텔에서 하루 더 자면 되지!” 하며 남편과 절반은 포기한 상태로 더욱 드물게 오가는 차들을 향해 간절한 도움을 청했다. 히치하이킹에 도움이 된다며 받아뒀던 작은 성조기도 열심히 흔들어 봤다. 그러나 예상대로 손을 흔들 기회도 없이 산으로 향하는 차가 이전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복귀를 포기하려는 찰나, 한 차량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하루종일 차를 잡는거 같은데 어디까지 가니?” 점심 무렵 우리가 처음 차를 잡을 때의 모습을 본 듯했다. 그간의 모험은 생략하고, “감사합니다. 코튼우드 레이크 트레일헤드요”라고 답했다. “그래? 그럼 차에 기름 좀 넣고 와서 내가 데려다 줄테니 여기서 잠깐 기다릴래?”라며, 눈물나게 고마운 제안을 했다. 자신이 갈 목적지도 아닌데 차에 기름까지 넣고 데려다 준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샘과의 기념사진. 그는 오전에 이미 한 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귀가했으나, 우리를 위해 두 번째 방문을 했다고.

그의 이름은 샘(Sam), 샌프란시스코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그는 ‘아버지의 날’을 맞아 고향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뵙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아까보다 더 긴 고갯길을 50분 가까이 올라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마운 마음에 작별 인사와 함께 20달러를 건넸다. 보통 적은 사례를 건네긴 하지만, 기름까지 넣고 일부러 산을 오른 그의 배려에 이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도 “오, 좀 많은데?”라며 놀라운 기색을 표했지만, 그것이 내 진심이었다.

세번째 히치하이킹까지 무사히 마치고 산에 들어서니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한 여행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새삼 되새기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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