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진 유망주 유럽진출, 한 세대의 절멸과 韓축구 위기 불러올수도 [이재호의 할말하자]

이재호 기자 2025. 7.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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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유행이면서 흐름이다. 한국 축구에 '꽤 한다는' 유망주들이 대거 유럽 진출을 하고 있다. 이름조차 낯선 선수들뿐 아니라 이미 K리그에서 실력을 입증한 이들까지 속속 해외로 떠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사례는 있었다. 손흥민도 이강인도, 이승우도 그랬는데 왜 새삼스럽게 그러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흐름이 지나치게 보편화되면서 일부 에이전트 주도하에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 결과 2000년대생들의 많은 해외진출이 오히려 한 세대의 절멸(絕滅)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이는 곧 손흥민-김민재 이후 한국 축구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성장 멈춘 유럽 유망주들

축구팬들이 가장 익숙한 잉글랜드를 보자. 중앙수비수 김지수(2004년생)는 18세의 나이에 성남FC를 거쳐 프리미어리그 브렌트포드에 입단했다. 최연소 EPL 진출로 관심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2년 동안 고작 리그 3경기 30분 출전에 그쳤다.

덴마크 미트윌란에서 조규성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2002년생 중앙 수비수 이한범도 마찬가지다. 18세라는 나이에 FC서울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입단한 그는 2023년 여름 덴마크에 진출할 때만해도 향후 김민재와 호흡을 맞출 중앙 수비수로써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미트윌란에서 2년간 11경기정도 출전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렇게 경기를 못 뛰어 골치인 선수들도 있지만 경기를 뛰어도 성장이 지체된듯한 유망주들도 있다. 2024 K리그1 영플레이어상을 거머쥐고 토트넘 홋스퍼로 향한 양민혁(2006년생)은 토트넘 1군불가 판정을 받고 2부리그 QPR로 임대됐으나 뚜렷한 활약 없이 시즌 막판에는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2003년생 배준호는 대전 하나시티즌에서 활약 후 스토크시티에 입단, 첫 시즌에는 스토크시티 올해의 선수를 수상할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이듬해에는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며 2년차 징크스에 빠졌다.

정상빈도 마찬가지다. 2021년 19세의 나이로 수원 삼성에서 28경기 6골2도움으로 K리그를 대표하는 신성으로 떠올랐던 그는 울버햄튼 입단 후 스위스 그라스호퍼로 임대됐으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당시 파울루 벤투호에 뽑히고 국가대표 데뷔전 데뷔골까지 넣을 정도로 핫했던 시기에 경기에 나오지 못하며 2년을 날렸고 이후 미국 MLS에 갔지만 또 2년간 큰 활약 없이 주전경쟁에서 밀린 모습이다.

이외에도 부산 아이파크에서 '넥스트 기성용'이라는 기대를 받던 권혁규(2001년생), 고영준(2001년생), 장신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됐던 군복무까지 마친 이영준(2003년생)은 유럽 변방인 스코틀랜드, 세르비아, 스위스로 갔지만 뚜렷한 활약없이 잊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럽행은 계속되고 있다. 대전 하나시티즌에서 31경기를 뛴 2006년생 윤도영은 EPL 브라이튼 호브 알비온 입단을 위해 지난 6월 말 출국했고, 수원 삼성 최고 재능으로 기대받는 박승수(2007년생)는 EPL 뉴캐슬 입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합뉴스

▶무분별한 해외 진출의 명과암

한국 사회의 문제인 '인구감소'는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구가 적어질수록 '힘든' 운동을 꺼려하는건 물론 기본적인 스포츠 인구도 줄어든다. 즉 유망주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더 귀해지는 상황이 오는데 이럴 때 유망주들이 해외에 나갔다가 실패하게 되면 이는 곧 한국 축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선수는 뛰어야 한다. 훈련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 경기를 뛰고 경쟁을 하고 상대를 이겨야 성장한다. 뛰지 않는 선수는 의미가 없고 성장할 수 없다. 특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은 가장 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한 시기다. 이 시기를 허비하면 축구선수로 성장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수장인 신상우 감독 역시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에 대해 "분명 단점보다 장점이 크다고 본다. 해외를 나가 강한 선수들과 훈련하다보면 투지 부분에서 성숙해서 대표팀에 오더라"라며 "물론 단점도 있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가다보니 경기를 적은 시간만 뛴다"고 우려했다.

이어 "결국 본인들이 노력해서 주전 경쟁을 이겨야한다. 선수가 출전시간이 적고 경기를 뛰지 못하면 경기력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대표팀 전력에 손실"이라면서 경계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 진출해 성공한 손흥민과 이강인. 하지만 이들의 사례가 곧 성공 공식은 아니다. 손흥민은 특유의 절박함과 독일식 체계 안에서 성장했고, 이강인은 발렌시아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장기적으로 길러진 케이스다.

그 이후 유사한 성공 사례는 드물며, 오히려 대부분의 국가대표 주전 선수들은 K리그에서 실력을 증명한 후 유럽에 진출해 성공했다. 김민재, 이재성, 황인범, 설영우 등이 대표적이다. 특이한 사례였던 손흥민과 이강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마치 그것이 성공 공식인냥 잘못 인식이 됐다는 부분도 생각해봐야한다.

ⓒ연합뉴스

해외에 진출할 정도면 나름 그 나이대 최고 유망주이다. 하지만 언어도, 환경도 다른 해외에서 경기도 뛰지 못한채 시간을 허비하다보면 결국 국내에서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아간 동나이대 선수들보다 뒤처지고 만다.

설령 경기를 뛴다할지라도 외국에서 언어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 이부분이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도 많았다. 박지성보다 나은 재능으로 평가받았지만 2002 월드컵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등을 갔다 실패한 이천수 역시 이부분을 수없이 언급한다.

이처럼 많은 2000년대생 유망주들의 이른 유럽 진출과 실패가 반복되면 결국 이는 '2000년대생' 한 세대의 절멸로 이어진다. 이렇게 한 세대가 절멸하게 되면 문제는 은퇴가 머지 않은 손흥민, 30대가 되는 김민재 이후 한국 축구의 미래조차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에이전트들은 '유럽을 많이 보낸다'는 타이틀로 부와 명예를 챙길지 모른다. 선수들도 어릴때부터 꿈꾸던 유럽 진출을 해냈다며 기뻐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전세계에서 온 수많은 유망주 중 하나일뿐이며 적응해야하며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고 그러다 나이를 먹는다. 에이전트야 '선수가 적응을 못했다'고 탓하면 그만이다.

손흥민과 함께 독일 레버쿠젠에서 뛰었던 류승우, 손흥민 이후 8년만에 10대 국가대표 데뷔를 했던 김정민 등은 유럽 조기 진출 후 실패를 겪고, 지금 한창 나이지만 K리그에서조차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손흥민, 이강인처럼 어린 나이에 나가 성공할 수도 있다. K리그에서 일단 증명하고 충분히 성장을 거친 후 해외로 나가 김민재처럼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 유망주들의 유럽진출이 잘못되면 한 세대의 절멸과 한국 축구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축구계 전체가 고민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연합뉴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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