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보수의 삶, 진보의 삶

기조가 활동하던 19세기의 정치 제도에는 왕정이 지배적이어서, 공화주의라는 이념은 진보적 사고로 여겨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경구는 “젊어서 진보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가슴이 없고, 늙어서까지 진보주의자로 남는 사람을 머리가 없다”로 변용되더니,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젊어 좌파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늙어서까지 좌파로 자처하는 사람은 두뇌가 없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좌우파가 좌우익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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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익 협치와 공존 쉽지 않아
사회적 갈등 비용 GDP의 27%
서로를 적이 아닌 거울로 삼아
날아가는 새의 두 날개가 돼야
」

그렇다면, 좌우파는 어떤 가치 충돌로 다투는가? 기본적으로 보수파는 재산이 미덕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으며 좌파는 인간다운 삶의 가치에 무게를 둔다. 더 나아가 보수는 자유가 더 소중하고 진보는 평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보수는 고학력의 인텔리겐치아를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의 지배를 미덕으로 삼고 있지만 진보 진영은 민중주의에 집착하며, 보수에는 화이트칼라가 많고 진보에는 블루칼라가 많다. 이런 정향을 종합하여 나타내 보면 보수는 과거지향적이고 진보는 미래지향적이다. 누구에게는 석양이 아름답고 누구는 일출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여행을 떠나면서 보수주의자들은 새 신발의 불편함을 타박하는 것과는 달리 진보주의자들은 신형의 장비에 집착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첫째로, 자본이 중요하다는 우익과 인간다움이 중요하다는 좌익의 대척에서 보수는 너무 게걸스러웠고, 진보는 터무니없이 인권을 요구했다. 강도가 침입했을 때 우파는 그에게 발포할 수 있지만 좌파는 발포를 거부한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는 부패로 무너지고, 진보는 분열로 무너진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보수의 탐욕은 “절제와 근검”의 측면에서 중용을 지키지 못했으며, 인간다움을 요구하던 진보의 청년층은 훈련되지 않은 자유 의지에 따라 거리로 뛰쳐나와 질주했다.
둘째로, 보수의 가치는 역사와 유산이며, 진보의 가치는 새로운 것의 창조이다. 그래서 보수는 유서(由緖)를 존숭하고 진보는 새로운 지식에 몰입한다. 한수산의 『부초』에서 석이 엄마는 “흘러간 것은 아름다웠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지만, 젊은이들은 더 넓은 세상을 보러 배낭여행을 떠난다. 새해 아침에 동해의 일출을 보러 갈 것인가, 아니면 홍도의 낙조를 보러 갈 것인가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차이의 문제이다.
셋째로, 보수는 어른 노릇을 못 했고, 진보는 버릇없이 무례했다. 이 모든 것의 결과이자 원인으로 나타난 것이 가정의 붕괴이다. 이제는 할아버지의 꾸짖음이 없고, 사촌의 유대가 없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메마르고 퉁명스럽다. 어른은 영(令)이 서지 않고 젊은이는 “우리에게는 본받을 선학(先學)이 없다”고 외치면서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땅에서 솟은 무리처럼 위로 치받고 아래로 걷어찼다.
넷째로, 고령사회로 갈수록 노령 빈곤이 심각한 것과는 달리 젊은층의 소비가 호사스럽다. 노인들은 일찌거니 가진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노년 무전(老年無錢)의 서러움에 고통받고 있다. 젊은이들은 부모들에게 눈 똑바로 뜨고 대든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허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부자간에 상속과 부양을 둘러싼 소송을 보노라면 무너진 인륜에 가슴이 저린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는가? 공부해야 한다. 공자(孔子)께서는 “공부를 충분히 했으면 벼슬길에 나가도 좋다”(『論語』)고 말씀하셨지만, 한국의 논객(ideologue)들은 공부가 부족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이념은 풋설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정치인은 공부하지 않고 설치는 무리(思而不學則殆)이다. 아무리 화사한 이념도 빵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은 공허하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46.1%이고, 가계부채 총액은 국내총생산과 같으며, 결식아동은 30만 명이다. 사회적 갈등 비용이 GDP의 27%였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2009)는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한국 사회는 고도성장을 이루는 동안 음습한 늪지가 너무 많이 생겼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좌우익의 협치(協治)나 공존처럼 몽환적 공약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좌우 각자의 위치에서 건강하고 양식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섬멸해야 할 적이 아니라 서로의 거울이다. 좌파의 1세대 논객 리영희의 주장처럼,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날기 때문”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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