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큰 출판사, 큰 나무보다 큰 사람 지향해야

2025. 7. 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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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소설가
얼마 전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 현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지난해도 약 15만 관객이 몰려드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는데, 올해 도서전은 얼리버드(조기 할인 판매) 단계에서 준비된 티켓 매진으로 지난해보다 더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각 출판사가 선보인 도서전 한정판 ‘굿즈’(특정 인물·콘텐트·브랜드 관련 파생상품)는 흥행에 불을 붙인 일등공신이었다. 키링·티셔츠·응원봉 등 종류도 다채로웠다.

「 최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성황
특히 큰 출판사 부스에 관객 몰려
출판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심화
지원사업서 작은 출판사 배려해야

수많은 인파 속에서 헤매던 나는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 큰지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작은 나무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도, 큰 나무 아래에 있으면 그 가치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큰 나무 아래에선 작은 나무가 크게 자라기도 어렵다. 큰 나무가 햇빛과 영양분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큰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는 작은 나무는커녕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 큰 출판사를 제외하면 광고비를 들일 여력이 있는 출판사는 드물다. 그러다 보니 작은 출판사의 책은 온라인 서점 메인 페이지에 노출되거나 오프라인 서점의 목 좋은 매대에 놓이기가 어렵다. 언론도 관성처럼 큰 출판사의 책을 주로 다룬다.

도서전에서 책 몇 권을 더 판다고 해서 출판사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진 않는다. 도서전은 책을 파는 시장이라기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출판사와 책의 존재를 알리는 생존 신고 현장에 가깝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런 도서전의 순기능을 잃어버린 자리였다. 큰 출판사 부스는 이번 도서전의 관객을 무서운 중력으로 빨아들인 ‘블랙홀’이었다. 그런 가운데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관객을 하나도 붙잡지 못하는 작은 출판사 부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규모가 너무 작아 출판사 이름조차 확인하기 쉽지 않은 부스도 적지 않았다.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매년 그래왔듯이 올해 도서전의 관객 동선 역시 큰 출판사, 작은 출판사, 그보다 더 작은 독립 출판사 순으로 이어졌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굿즈’로 화려하게 무장한 큰 출판사의 대규모 부스에서 지갑을 열고 인증샷을 촬영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부스에 와선 마음에 드는 책이 보여도 집어 들기를 망설이게 된다. 동선에 변화를 주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국제도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빈국인 대만이 마련한 ‘대만관’은 한산했다. 외국인 관객도 어쩌다 한 명을 겨우 마주칠 정도로 드물었다. 참여한 해외 출판사 수도 16개국 106개로 지난해(18개국 122개)보다 줄어들었다. 판권 미팅도 적지 않았다는데, 얼마나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진 미지수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책을 주제로 열리는 국내 최대의 잔치다. 이런 잔치가 ‘서울굿즈도서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도서전의 순기능을 강화하려면 큰 출판사의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국제도서전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대형 출판사는 국내 독자를 겨냥한 ‘굿즈’ 제작과 책 판매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세계에 책을 더 알리는 역할에 힘써줬으면 좋겠다. 주최 측도 작은 출판사가 큰 비용 부담 없이 참여해 더 많은 독자와 소통할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한다. 불과 50㎝ 남짓한 넓이의 좁은 부스에 책 몇 권을 두고 서 있는 한 출판사 관계자의 모습을 봤을 땐 괜히 내가 부끄러웠다.

도서전뿐만이 아니다. 출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지원사업에서도 큰 출판사의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매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나눔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도서를 예로 들어보겠다. 문학나눔은 국내에서 발간된 우수 문학 도서를, 세종도서는 우수 학술 및 교양 도서를 선정·보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선정된 도서를 살펴보면 큰 출판사의 책이 다수 눈에 띈다. 그중에는 소위 대박을 터트린 베스트셀러도 있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과연 큰 출판사가 작은 출판사를 제치고 이런 지원사업에 기대야 할 정도로 허약한 곳인가.

‘큰 나무 덕은 못 봐도, 큰 사람 덕은 본다’고 했다. 나무와 달리 사람은 훌륭한 사람 곁에 있으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는다는 말이다. 도서전이든 지원사업이든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지 않던가. 앞으로 큰 출판사가 큰 나무보다 큰 사람을 닮은 모습을 보여주길 희망한다.

정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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